▲<한일식당>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 60년 넘는 세월은 쇠도 닳아 없어지게 했다. 자루에는 1951년 미국산이라는 글씨가 남아있다. 신계현씨의 남편이 생전에 어머니께 선물한 국자라고 한다.
장선애
이 식당은 재료 고르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주재료인 소머리는 믿을만한 거래처에서 한우 암소만 받는다. 김치와 쌀, 국수는 물론이고 파와 고추, 마늘 등 양념류까지 생산자와 직거래하고 있다. 고추만 해도 한해에 2000근 정도 소비한다니 그 양이 어마어마 하지만, 가능하면 지역산으로 충당한다.
국물을 우리는 과정은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든다. 장 이틀 전날 아침, 소머리가 도착하면 종일 핏물을 뺀 뒤 저녁부터 삶기 시작한다. 국물을 우리는 시간은 15시간 정도, 반드시 가마솥에 국물을 내야 맛이 잘 우러나고 고기도 잘 삶아진다고 한다.
신씨가 맡아 운영한 세월동안에만 구멍난 가마솥을 서너차례 바꿨다고 하니, 새삼 식당의 역사가 놀랍다. 기름기는 여러 차례 제거해야 깔끔한 맛이 난다. 모두 정성으로 하는 일이다. 2대 손맛인 신씨가 변화를 준 것은 단 하나다.
"어머니는 옛날식으로 고기를 양념해 무친 뒤 국물을 부어 내셨지만, 그러다 보니 국이 좀 식는 문제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아예 고기와 양념을 넣어 끓이고 밥도 뜨겁게 해서 내고 있어요."국밥 아닌 보약 한그릇세련된 외모와 조곤조곤한 말투가 국밥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3대 입맛 일자씨.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할머니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주방으로 들어온 지는 10년째다.
"처음엔 직장 다니면서 바쁠 때 잠깐 엄마를 도와드리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제대로 배우려니 너무 어렵더라구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하루종일 고기만 썰 때는 '내가 왜 이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회의를 느끼던 일자씨가 마음을 잡게 된 것은 손님들 덕분이었다. 손님들이 나가면서 "대한민국 최고","먹고 나면 기운이 솟는다"는 칭찬을 하고, "교포인데 한국에 왔다가 일부러 왔다"거나 "부모님이 좋아하신다"며 그릇을 들고 사러오는 손님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웃으실지 모르는데, 어르신들이 국물까지 다 드시고 가시면 보약 해드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 국밥에 자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남편입니다. '장모님 음식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맛있고, 가치 있다'고 늘 극찬을 했거든요." 어머니가 그랬듯 일자씨도 전통은 이어가면서 시대에 맞는 변화를 추구한다. 상호에 대한 고민도 있고, 향토음식화에 대한 계획도 있다. 그러나 절대 서두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13년 전 예산읍내로 자리를 옮겼다가 실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국물 뽑고 맛을 내서 인테리어 잘 한 식당을 냈는데 장사가 안되더라구요. 식당 건물과 주변 분위기, 기다리는 사람들에 밀려 급하게 먹는 불편함까지,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맛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죠." 손님들 중에는 "식당 확장도 하고, 체인점도 내고 그러지, 젊은 사람이 왜 안주하냐"고 조언도 하지만, 일자씨는 확장보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온 맛과 식당의 이름을 오래 남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깊다. 음식문화와 관련한 공부도 하고 싶다.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해 최고의 음식을 드리겠다는 주인의식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열린 슬로푸드 국제본부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딜가도 그 원칙은 변치 않더라구요. 우리도 크고 새로운 것만 추구할 게 아니라, 변치 않는 맛을 잇고 전통을 살리는데 집중해야 합니다."<한일식당> 소머리국밥, 일자씨의 딸이 대를 잇는 것도 가능할까?
"본인이 원한다면 무조건 찬성이죠" 모녀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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