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실 한켠에 제자들로부터 받은 감사의 손편지가 놓여있다.
제자들이 선물한 손편지에는 '교수님이 항상 열정적으로 수업과 학생들을 챙겨줘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길 바란다'고 적혀있었다.
유성호
이 교수가 30여 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유독 '보직 교수'와 '연구 교수'(안식년) 생활을 피했다. 보직은 사회과학대 교무부학장 2년이 유일하고 연구교수 생활도 1년 반이 고작이다. 계속 강단에서 더 많은 학생들과 호흡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10년 전부터 대학원 강의를 젊은 교수들에게 맡기고 학부 강의에 전념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6년에 한 번씩 안식년을 요청할 수 있는데 1990년대 초반 연구교수로 1년 반 강의를 쉬었더니 학생들과 멀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연구교수 가기도 싫어지더라고요."
이처럼 학생들과 교류를 즐기다 보니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다. 지난 2010년 3월에 생긴 팬클럽 회원이 15명 정도인데 정작 경제학부생은 없고 대부분 미술대학 여학생들이라고 한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 교수모임에 취재 왔던 대학신문 기자가 팬클럽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5명 정도가 모임에 나오는데 정작 경제학과 출신은 없어요. 스승의 날이나 생일에 한 번씩 모여 미술관도 가고 여행도 가는데, 우리 조교가 팬클럽 활동에 위기의식을 느껴 팬클럽 회장에게 활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예요."팬클럽 회원에 가입하려면 이른바 '이준구 고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이 교수 휴대폰 번호는 물론 취미와 좋아하는 색깔, 박사 학위 주제까지 알아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퇴임 논문집은 민폐"... 제자들 <꽃보다 제자>로 '보답'지난 30여 년 이 교수를 거쳐간 제자들의 스승 사랑도 팬클럽 못지않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제자 28명은 지난해 말 이 교수와 인연을 담은 에세이를 모아 <꽃보다 제자>라는 '퇴임 기념 문집'을 펴냈다. 대부분 학계와 국책연구원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익숙한 '논문' 대신 낯선 '에세이'에 쓰기로 한 데는 나름 사연이 있다.
"보통 원로 교수를 대우해 준다고 환갑 되면 회갑기념논문집, 은퇴하면 정년기념논문집을 내는 게 관례예요. 그런데 그게 민폐예요. 젊은 교수가 논문을 저널에 실어야 하는데 여기 내면 연구 실적 인정도 안 돼요. 정년논문집 내겠다고 해서 민폐다, 제발 하지 말라고 했더니 에세이집을 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거 받고 난 정말 행복한 교수란 느낌을 받았어요."이 교수의 제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앞으로 5년 동안 명예교수로 경제학부 1학년생들에게 경제학원론1, 2를 가르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의 전공인 '미시경제'나 '재정학' 대신 '경제학원론'을 선택한 이유도 재밌다.
"신입생을 먼저 만나려고 일부러 '경제학원론1'을 선택했어요.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해요. 저도 1학년 때 조순 교수 강연을 들은 게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그동안 2학기 때 '경제학원론2'만 가르쳤는데, 이번엔 1학기 때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한 거죠."강의 인원을 120명으로 제한했는데도 정원을 초과해 초과 수강자를 받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이 교수 강의가 학생 고생도 안 시키고 학점도 잘 준다는 이른바 '꿀강의'는 아니지만, 그가 쓴 책이 서울대생뿐 아니라 모든 경제학도들의 필독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경제학 필독서' 명성... '꿀강의' 아니어도 정원 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