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있다.
권우성
가장 힘든 부대는 '자기가 나온 부대'다. 예비역들은 얼마만큼 많이 맞았고, 혼나면서 군 생활을 했는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지겨운 군대 이야기. 과거에는 힘든 군 생활을 보낸 것이 자랑이었다면, 지금은 군대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걸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군대의 사건 사고는 예전부터 심각했다. 여전히 진상규명되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많지만, 이제껏 감추기 바빴던 군대의 참혹한 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식물인간 이등병 폭행 사건, 포천 군부대 성추행 등 군부대 사고가 연일 뉴스를 채우고 있다. 이제는 누가 어떤 사건의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단번에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보안 유지'라는 대외적인 명분으로 지독한 폐쇄성을 갖는 군대의 문제점은 넘쳐난다. 사병들 간의 구타와 언어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문제는 무조건 덮고 보는 상급기관의 대처방식도 한심하다. 또한 군대의 사건사고를 재판하는 군사법원의 체계마저 의문점 투성이다.
법원과 검찰이 분리된 사회의 재판과는 다르게 군사법원은 군 체제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군법무관 중 보직에 따라 군 판사와 군 검찰관을 임명해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단장은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시, 형량을 감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전시를 위한 군대 재판이라는 명목으로 상식을 벗어난 재판이 이뤄지는 것이다.
관심사병, 혹은 관심병사가 있다. 부대는 '관심사병'을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관심사병'이 되어야만 한다. 결국 생활관에는 '관심사병'과 '비 관심사병'이 남게 된다. 그리고 총기사고와 구타로 인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마치 그들이 '관심사병'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라는 정당성을 얻어 간다. '여자' 군인이기 때문에 성희롱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실제로 사병들은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덮으려고 하는 상급기관을 믿지 못한다. 게다가 부대 내의 부조리를 신고하면 마치 자신이 배신자로 여겨질 것 같아 두렵다. 그들은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자발적인 신고를 통해, 군대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간부에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넘어서 상급 부대로 통하는 핫라인의 확충이 필요하다. 더불어 민간 기관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더욱 강력한 감시 체계와 처벌을 포함한 효과적인 정신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군대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안'이라는 안전장치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내 자식은 군대에서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지금 어울리지 않는다. '내 자식은 군대에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더 현실적이다.
군대는 지키는 것이 목적이지, 적을 만들고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적이 같은 생활관에서 침상을 함께 쓰는 소대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관심사병'이라서 적이 된 건지, 적이라서 '관심사병'이 된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짚어봐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누구도 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에는 명확한 계급 체계와 그에 따른 역할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임에게 얼차려를 주고, 혼을 내야 한다. 그래도 같은 생활관의 사람들이 형이자 동생이고, 가족이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웃고, 한 명의 고민이 모두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부대 배치와 소대원 선택은 사병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군대에는 스무 살, 스물한 살 친구들이 감당해내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요즘은 군대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속절없이 당하거나, 스스로 괴물이 돼야 하나보다.
현실 속 군대에는 없는 <진짜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