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가 배달 2년... 화장실 변기 얼어 겨우 녹였다?

용산전자상가 노동자의 일기

등록 2015.02.13 12:07수정 2015.02.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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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전자상가는 옛날과 달리 소비자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택배 이용이 가장 많다.
용산전자상가는 옛날과 달리 소비자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택배 이용이 가장 많다.성낙희

"용산에선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전자상가에 없는 게 없어서 물건을 하나씩 모으면 우주선을 만들 정도라는 우스개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용산전자상가는 상점들이 가득했고, 날마다 소비자들로 붐비는 장터였다. 그러나 지금 상점들은 하나하나 문을 닫고 있다. 소비자의 발걸음은 택배 차량들이 대신하게 됐다. 몇 개의 온라인 쇼핑몰이 대형화하면서 그렇게나 많던 소상공인들은 자리를 내줬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자상가에서 필수로 꼽히는 직종이 있다. 배달이다. 차량을 이용하는 배달이 아니다. 수레와 두 발을 이용한다. 온라인 대형 쇼핑몰들을 비롯한 여러 소매점에 제품을 납품한다. 모두 전자상가와 그 주변에 있어서 하루 종일 전자상가를 누비고 다닌다.

기자는 2년여 전부터 이곳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 우리는 오전 9시께 출근해서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신다. 잠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무실 프린터기를 쳐다본다. 전표가 출력되면 상호를 확인하고 제품을 챙겨서 길을 나선다. 제품이 많으면 키 높이 넘게 실은 수레를 끌기도 한다.

전자상가를 몇 바퀴 돌고 나면 점심시간이 된다. 백반이나 돈까스, 자장면 등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배달을 시작한다. 오전보다 오후 업무가 더 많다. 해가 지고 가로등불이 밝을 때까지 길을 누빈다. 그렇게 업무를 마치고 각자 여가시간을 보낸다. 마음 맞는 사람들은 술잔을 나누기도 한다.

 전자상가에서 배달은 필수 직종이다. 여러 소매점에 제품을 납품한다.
전자상가에서 배달은 필수 직종이다. 여러 소매점에 제품을 납품한다.성낙희

우리는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고립된 섬과 같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회 뉴스는 이곳에서 전혀 이슈가 안 된다. 정치인들이 멀끔한 옷차림으로 단상에서 내뱉는 발언은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의 정치 뉴스 역시 여기에서 너무 먼, 다른 언어이다. 소시민의 정치적 의식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나는 꼼수다>도 이곳까지 힘을 미치진 못했다.


정치인들이 자주 시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입방아에 오르지만, 이곳에는 미치지 못한다. 근자에 한번 분노케 한 일이 있었는데, 담뱃값 인상이다. 그러나 담뱃값을 올린 주체가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정치인들이 한 일이라고만 대강 알고 있다.

배달 직원들 여러 명이 담배를 끊었다. 전자담배로 바꾼 사람도 있다. 담뱃값을 감당하기에 너무 많이 올랐고, 다른 세금과 물가도 올랐다. 우리는 한 달에 130~15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150만 원이면 많이 받는 편인데, 그들의 일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런 배달 직원은 자주 바뀐다.


길을 걸으며 일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도 있다. 건강에 좋고, 답답하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 같은 겨울날 칼바람에는 얼굴이 따갑다. 지난 주말에는 화장실 변기가 얼어붙어서 이동식 라디에이터로 간신히 녹였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제, 각종 복지 정책은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우리에게 너무 어렵다. 그 사안들을 설명하는 언론의 말도 어렵다. 누가 뭘 어떻게 해주겠다는 것인지 우리의 언어로 쉽게 말해주는 이들이 없다.

외부인들은 우리에게 정치에 너무 관심이 없다고 타박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 정책의 변화를 통해 혜택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더구나 하루하루 배달을 해내느라, 힘겹게 한 주를 보내느라, 남는 시간에 편하게 쉬고 싶어서, 어려운 언어를 배울 힘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주어진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것이 최선이다.
#용산전자상가 #노동과 정치 #정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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