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조문하는 조문객들시골묘에서 조문하는 조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응찬
다음 날, 입관일이었다. 장례지도사의 인도에 따라 가족들이 영안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수의를 입고 천으로 얼굴을 가린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천 위로 할아버지의 뒤로 넘긴 흰머리가 보였다. 고모할머니(할아버지의 여동생)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셨다.
장례지도사가 마지막 가시기 전, 가족들에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보라고 했다. 차가웠다. 얼마 전 병원에서 잡은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손이 지금은 차갑고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곧이어 얼굴을 가리던 하얀 천을 걷어내자 입술을 굳게 다문 할아버지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프셨을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셨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 참으려 했지만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가족들은 순서대로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아버지이자, 장인이자, 오빠이기도 한 할아버지에게 모두 그간의 정과 소회를 풀었다. 살아계실 때 들으셨으면 무척 기뻐하셨을 말들을 그땐 왜 그리도 하지 못했던 걸까. 미안함에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장례는 떠난 사람보다 남은 자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모든 절차는 할아버지를 관 속에 모시고서야 끝이 났다. 가족들은 감정을 추스르고 입관예배에 참석했다. 장례를 치르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상중에 누군가 와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조부상인데도 조문 와준 회사 동기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은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마음에 남았다. 입관예배는 어머니 교회 분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와주신 분들이 너무 고마웠고 큰 위로가 됐다.
또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친척들이 하나가 되었다. 보통 돌아가신 분의 유산 때문에 친척들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우리는 그러기는커녕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며 더 단합했다. 평소 친척 간에 하지 못한 대화들도 이 기회를 빌려 나눌 수 있었다. 큰 일을 치르며 서로 하나가 되고 뭉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