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표지
한겨례출판
공장에서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소설가인 본인은 아무것도 만들고 있지 못하는 듯 해 공장이 부럽다고 말한 김중혁은 <메이드 인 공장>에서 본격적인 공장 탐방을 시작하기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 공장 그 자체를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일지도 모르므로, 공장은 어떻게 보면 서로 연결된 우리 인간을 이해하기에 최적의 장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중혁은 15군데의 공장을 찾아 다녔다. 나는 그 중 두 곳의 공장을 향해 먼저 달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있던 맥주 공장과 라면 공장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이, 더더더 많이 알고 싶은 법. 그래서 나는 김중혁의 글이 성에 차지 않았다. 맥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달라! 라면에 대해서도 더! 그렇지만 역시나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웬만해선 미소를 짓게 되는 법, 별 얘기가 아님에도 호들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법인 것 같다. 이 책은 내게 딱 그만큼이었다.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일 만큼.
맥주 공장에서 시음도 하고 공정도 지켜보던 김중혁은 '왜 우리 나라 맥주는 맛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더 맛있어 질 거라는 기대를 안고 글을 끝마친다.(조금 싱겁게...) 라면 공장에서는 조금 더 세밀한 관찰이 이루어졌다. 라면은 왜 꼬불꼬불한가에 대한 풀리지 않던 의문이 비로소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면을 꼬불꼬불하게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면이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직선으로 면을 뽑아내면 부서졌을 때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다. 더 좁은 곳에 더 많은 양의 면을 압축시키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한 면이 필수적이다.흐음, 그랬었군. 너구리 라면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도 하나 있었다. 너구리 라면에 들어가는 다시마는 하나하나 사람이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기계는 너구리 라면에 다시마를 넣지 못한다는 사실, 왠지 조금 통쾌하지 않은가! 혹 앞으로 너구리 라면에서 두 개의 다시마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수작업으로 인해 발생한 실수였다는 점을 생각한 뒤 맛있게 라면을 먹으면 되겠다.
김중혁과 함께 다른 공장들도 구경했다. 김중혁은 공장에서 본 모든 물건들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공평하게 그 관심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두 공장에서만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머뭇머뭇. 우물쭈물. 벌게진 얼굴로 공장 안을 휙 둘러보고 있을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혼자 흐흐흐 웃었다. 그 곳에서는 콘돔과 브래지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콘돔공장에서 전수 조사를 하는 이유두 공장에 관한 글을 읽은 뒤 내 머릿속에 남은 정보는 각각 이렇다. 콘돔은 제조보다 검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전수 검사를 한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콘돔을 일일이 다 검사하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불량품 하나에 아이 한 명이다."
브래지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정보를 알았다. 경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사이즈는 80A라는 것. 그리고 A컵을 만들기가 가장 쉽고, 뒤로 갈수록 작업 과정이 더 까다로워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E컵이나 F컵은 너무 커서 한 손으로 쥐고 작업하기가 힘들어요."
팟캐스트를 통해 들었던 소설가 김중혁의 유쾌한 목소리가 책에서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의 글은 사려 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진지한 듯 하면서도 가볍게 통통 튀어 오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향해 걸음을 옮겨본 지가 언제던가. 아니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파에 가만히 누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바이젠 맥주가 떠올랐고, 어제 사다 놓은 한 묶음의 라면도 떠올랐다. 책 읽고, 글 쓰는 것도 좋고, 마룬 파이브도 좋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나의 마음도 좋다. 저녁의 어스름한 분위기가 좋고, 혼자 앉아 청승을 떠는 것도 좋고,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좋다. 걷고 싶고, 수영하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눈을 마주보고 싶다. 이 모든 좋은 것들을 떠올리자 이 중 많은 것을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해졌다. 좋아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한겨레출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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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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