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증명하라'는 가정통신문
부모 마음 안다면 이럴 순 없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33] 경남 '무상급식' 중단... 밥값 빼서 사교육비 지원?

등록 2015.03.12 13:58수정 2015.03.1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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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밥값 빼서, 얘 문제집 사주겠다는 거잖아요?"

아침 신문에 난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 광고를 본 한 아이의 뜨끔한 비유다. 지난 11일의 일이었다.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어느덧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던 '무상급식'에 몽니를 부리더니 '전국 최초'로 아이들 밥그릇을 뒤엎을 모양이다. 부자들의 밥값으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사주고 학원비를 대주겠다며 되레 생색을 내고 있다.

"홍준표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은 무상급식 중단 명분" 기사에 따르면, 경남도는 도비 257억 원과 시군비 386억 원(총 643억 원)을 들여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지원 대상사업은 서민자녀의 학력향상과 교육경비 지원을 위한 바우처사업, 맞춤형 교육지원사업, 교육여건 개선사업 등이다. 지원대상자 범위는 소득인정액 기준 최저생계비 250% 이하(4인 가구 기준, 월 실제 소득이 250만 원 정도) 가정의 초중고생 자녀라고 경남도는 밝혔다.

물론, 지원을 받으려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소득, 재산, 금융재산, 심지어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의 가액을 증빙하는 서류를 들고 3주 이내에 거주지 읍면동 사무소를 찾아가야 한다. 말이 좋아 '교육지원'이고 '동등한 교육기회 제공'이지 '사교육비 구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호언대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밥그릇 뒤엎은 홍준표, 이럴 순 없다

 경남도는 도비 257억 원과 시군비 386억 원(총 643억 원)을 들여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경남도는 도비 257억 원과 시군비 386억 원(총 643억 원)을 들여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진주시청

짝퉁 브랜드 패딩 입었다고 친구들이 놀릴까 봐 추운 날 얇디얇은 점퍼 차림으로 등교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알 텐데... 브랜드 운동화 신고 싶어서 멀쩡한 운동화를 칼로 찢으며 투정부려봤다면 다 알 수 있을 텐데... 급식비를 지원받으려고 '가난을 증명해 달라'는 가정통신문 항목을 빠짐없이 기록해 아이 손에 들려 보내야 했던 부모 마음을 헤아렸다면 이럴 순 없다.

무상급식이 없어지면 급식 지원을 받기 위해 학교에서 한 번, 사교육비를 지원 받기 위해 읍면동 사무소에 또 한 번,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설움을 아이들과 그 부모들더러 감수하라고 떠미는 형국이다. 그것도 '교육복지'라는 이름으로. 정작 가난한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추진되고 있는 '서민자녀 교육지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미리 염두에 둘 게 있다. '무상급식'이 중단되면 가장 고통 받을 사람이 누굴까. 밥값을 내야 하는 부자들일까. 그들에게 밥값 정도는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다. 혹여 '줬다 뺏어' 불쾌할지언정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작 느닷없는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건, '공짜 밥을 먹고 있다'는 걸 친구와 선생님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내야 하는 가난한 아이들과 그들의 '무능한' 부모들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눈칫밥' 먹이지 않는 게 최고의 교육복지라는 걸 정녕 모르는 걸까. 그들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교 성적, 직업, 건강, 나아가 수명까지 좌지우지하는 뒤틀린 현실에는 눈을 감은 채 교육의 본령을 외면하고 있다. 명색이 의무교육이라면 수업료나 교과서 대금보다 밥부터 무상으로 제공해야 옳다. 그것이야말로 '경제적 제약 없이'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 아니겠는가.


아이의 말마따나, 가난을 '증명한' 아이들이 부자 친구들이 낸 밥값으로 내준 책값과 학원비를 고마워하며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외려 생채기 난 자존심에 반감만 커질 뿐이다. 부모의 경제력은 사교육비를 매개로 자녀의 학교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다. 그보단 가난으로 상처받은 자존감이 학교 성적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열등반 아이들에게 문제집 잔뜩 사주고 무료로 학원 뺑뺑이 돌리게 한다고 우등반이 될 것 같아요? 열등반 아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 그것으로 그들의 '운명'은 끝이에요. 성적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친구들은 이렇게 말해요. 우등반 내에서는 '성골'과 '진골'을 오갈지언정, 열등반에 속하는 순간 영원한 '6두품'이라고."

사교육비 지원을 교육 기회의 균등이라고 보는 인식 자체가 우스꽝스럽다며 그는 이렇게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그가 정의한 교육이란,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일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라면, 교과서 하나만으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생활도 원만하단다. 가난한 아이들을 보란 듯 낙인찍어놓고, 선심 쓰듯 학원비 몇 푼 쥐어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부자들에게 세금 더 내라는 말은 못하면서..."

무릇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밥값 빼서 사교육비 대주는' 이런 좀스럽고 황당한 대책 말고, 사교육비가 창궐한 교육 현실을 바로잡을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보란 듯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한 교실에서 밥값 가지고 있는 집 아이와 없는 집 아이를 갈라 서로 눈치 보게 해서야 되겠는가.

끊임없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건 정치인으로서 본능에 가깝다. '무명'보다 '악명'이 낫다는 말은, 흔히 정치판의 불문율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오랜 진통 끝에 사회적 합의를 이룬 '무상급식'을 흠집 내려는 건 번지수가 틀렸다. 가난한 이들의 가슴을 후벼 놓고는 교육지원 운운하며 당위성을 주장하는 건, 정치인으로서 대중의 관심 한 번 끌어보려는 '서민 코스프레'에 다름 아니다.

아이는 '무상급식'을 두고 '무차별적 부자 무상급식'으로 '번역'해 놓은 광고를 보고, 다분히 악의적이고 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G20'에 속한 나라라고 으스대더니만,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아이들 밥값 빼서 지원 사업을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가 됐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무상급식' 중단 결정을 내린 홍준표 도지사와 경상남도 도민에게 건네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 밥값 내라며, 애꿎게 가난한 아이들 '쪽팔리게' 하지 말고, 차라리 그들의 밥값만큼 세금을 더 내게 하면 되잖아요. 부자들에게 세금 더 내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아이들 밥값 가지고 복지네 뭐네 하며 호들갑 떠는 모습이 너무 '찌질하게' 느껴져요. 우리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저런 사람에게 한 표도 안 줄 텐데. 어른들이란 참 이상해요."
#무상급식 중단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서민자녀 교육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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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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