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꽃, 달로 유명해진 3대정원... 실제 하나도 못 봤다

[구로베 알펜루트의 이쪽과 저쪽 ⑧] 가나자와시 겐로쿠엔

등록 2015.03.23 12:05수정 2015.03.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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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 이야기

 겐로쿠엔의 가라사키노마츠
겐로쿠엔의 가라사키노마츠이상기

가나자와는 이시카와현의 현청이 있는 도시다. 인구는 46만 정도로 중규모 도시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겐로쿠엔(兼六園)을 보기 위해 간다. 겐로쿠엔은 국가지정 특별 명승이자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여기서 3대 정원은 겐로쿠엔, 오카야마(岡山)시의 고라쿠엔(後樂園), 미토(水戶)시의 가이라쿠엔(偕樂園)을 말한다. 그럼 이 말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이들이 3대 정원이 된 이유는 뭘까?


3대 정원이라는 말은 20세기 들어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 정원은 눈(雪)과 달(月)과 꽃(花)이 좋아서 3대 정원에 선정되었다. 겐로쿠엔은 눈이 좋아, 고라쿠엔은 달이 좋아, 가이라쿠엔은 꽃이 좋아 3대 정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 정원은 모두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다이묘(大名) 정원으로,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과는 구별된다.

 이시카와바시 너머 가나자와성
이시카와바시 너머 가나자와성이상기

겐로쿠엔은 17세기 중반 가나자와성 외곽에 조성되었다. 성과 겐로쿠엔 사이에는 해자가 있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해자를 메워 도로를 내면서 겐로쿠엔과 가나자와성은 이시카와바시(石川橋) 다리로 연결된다.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이곳에 박물관, 도서관, 학교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1985년까지 이들이 외곽으로 나가면서 겐로쿠엔은 명승에서 국가 특별명승으로 승격될 수 있었다.

겐로쿠엔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잠깐 가나자와성의 외관을 살펴본다. 우리 눈에는 다리 건너 이시카와몬(石川門)이 보인다. 이것은 가나자와성의 후문으로 1788년에 세워졌다. 하얀 회벽에 검은 기둥 그리고 그 위로 하얗게 빛나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지붕이 이처럼 하얀 것은 납이 함유된 기와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나자와성
가나자와성이상기

요즘으로 말하면 환경에 유해한 기와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시카와몬은 국가 중요문화재다. 가나자와성은 1999년부터 복원·정비공사를 시작해 2001년까지 1차 사업을 마무리했다. 이때 복원된 건물이 히시야구라(菱櫓), 하시츠메몬(橋爪門), 고지켄나가야(五十間長屋) 등이다.

이때부터 가나자와성 공원이라는 명칭이 생겨났고, 2006년 일본의 유명한 성 100선에 들어갔다. 2007년부터 가나자와성의 핵심건물인 니노마루 어전(二の丸御殿)의 복원 논의가 있었으나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가나자와 성터(城跡)는 2008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높은 데 위치해서 광대하고 조망이 좋은 가스미가이케(霞ケ池)

우리는 가츠라자카(桂坂) 입구를 통해 겐로쿠엔으로 들어간다. 그럼 겐로쿠엔이라는 정원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 말 그대로 풀어보면 '6가지 특징을 겸비하고 있는 정원'이 된다. 그러면 그 말은 언제 생겼고, 그 6가지 특징이 도대체 뭘까? 겐로쿠엔이라는 이름은 이시카와현의 전신인 가가번加賀藩) 시절인 1822년 마츠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겐로쿠엔 안내도
겐로쿠엔 안내도이상기

송나라 시인 이격비(李格非)가 쓴 <낙양명원기(洛陽名園記)>에 보면 유명 정원이 갖춰야할 6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넓고 크다(廣大), 깊고 고요하다(幽邃), 인공을 가미하다(人力), 고색창연하다(蒼古), 샘솟는 물이 있다(水泉), 조망이 좋다(眺望). 마츠다이라는 이 여섯 가지 조건을 갖춘 명원(名園)으로 가나자와성에 부속된 정원을 생각했고, 그곳에 겐로쿠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겐로쿠엔이 가지고 있는 6가지 특징 중 광대, 유수, 조망의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가스미가이케 연못이다. 이곳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광대하고 전망이 좋다. 그리고 연못으로 올라갈 때 만나는 사쿠라가오카(櫻ケ岡I와 도키와가오카(常磐ケ岡) 숲은 깊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거기다 이 연못은 인공으로 파 물을 가두었고, 그 옆에 인공샘인 분수를 만들었다. 정원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 200년 가까이 되었으니 고색창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스미카이케의 등롱(燈籠)
가스미카이케의 등롱(燈籠)이상기

가스미카이케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무지개 다리(虹橋)와 달 보기 다리(月見橋)다. 이곳에서 연못 쪽으로 보면 돌로 만든 등롱(燈籠)이 보이고, 봉래섬으로 알려진 호라이지마(蓬萊島)가 보인다. 봉래섬 너머로는 우치하시테이(內橋亭)라는 정자도 보인다. 또 왼쪽에 가라사키코마츠(唐崎松)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이 일품이다. 이 소나무는 비와호(琵琶湖)에 있는 가라사키에서 종자를 얻어다 키운, 줄기가 검은 흑송(黑松)으로 유명하다.

눈 보기 다리(雪見橋)에서 꽃 보기 다리(花見橋)까지

가스미가이케를 벗어나면 물길은 칠복신산(七福神山), 지도세다이(千歲台), 야마자키(山崎)산 쪽으로 이어진다. 이 물길에는 의미 있는 다리가 네 개나 있다. 기러기가 행렬을 지어 날아가는 듯한 모습의 간코바시(雁行橋)가 있다. 눈 보기 좋은 유키미바시(雪見橋)가 있다. 더 가면 지도세다이로 넘어가는 지도세바시((千歲橋)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꽃을 보기 좋은 하나미바시(花見橋)가 있다.

 야마토 다케루노미코토 동상
야마토 다케루노미코토 동상이상기

우리는 이제 지도세바시를 넘어 지도세다이로 간다. 지도세다이는 겐로쿠엔의 중심광장 정도에 해당한다. 그것은 이 지역이 비교적 넓고, 메이지 기념 동상도 있기 때문이다. 이 동상의 인물이 일본사람들이 고귀하게 여기는 야마토 타케루노미코토(日本武尊)다. 그는 게이코(景行) 천황의 셋째 아들로, 혼슈 서방의 야만족과 동방의 야만족을 토벌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가 차고 있던 쿠사나기검(草薙剣)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 칼은 천신으로부터 하사받은 세 가지 신기(神器)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 동상에서도 타케루노미코토는 칼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 동상이 어째서 이곳에 세워지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찾아도 알 수가 없다.

동상을 지나 세이손가쿠(成巽閣) 쪽으로 가려면 하나미바시를 건너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달 보는 다리, 눈 보는 다리, 꽃 보는 다리를 건넜지만, 실제 달과 눈 그리고 꽃을 보지 못했다. 달을 보려면 밤에 와야 하고, 눈을 보려면 겨울에 와야 하고, 꽃을 보려면 봄에 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최소한 세 번은 더 와야 할 것 같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나는 마음 속으로 달과 눈 그리고 꽃을 보면서 다리를 건넌다.

중요문화재인 세이손가쿠를 대충 훑어보다

 세이손가쿠
세이손가쿠이상기

세이손가쿠는 담장과 문 안쪽에 있는 건물로 겐로쿠엔과 연결되어 있다. 가가번의 13대 번주인 마에다 나리야쓰(前田斉泰)가 1863년 어머니의 노후용 저택으로 지어주었다. 2층으로 되어 있어, 1층은 서원(書院)으로 2층은 주거공간(奇屋)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서화, 인형, 의상 등의 전시물이 있다. 우리가 찾았을 때도 '여름 의상과 가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번주인 마에다가에 대대로 내려오던 인형이다. 이들은 고쇼(御所) 인형이라고 해서 번주의 자식들을 위해 만든 것으로, 표정, 기품, 재료 등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번주의 부인이 입던 의상도 문양, 자수, 의장(意匠) 등에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 의장은 요즘 말로 하면 디자인이 된다. 그리고 또 마에다가의 가구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구레테이(時雨亭)
시구레테이(時雨亭)이상기

세이손가쿠를 나온 아내와 나는 매화나무숲 가운데 있는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겐로쿠엔에서는 매화꽃과 벚꽃이 경쟁을 하는데, 매화가 선비의 꽃이라면 벚꽃은 게이샤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매화는 대개 2월말에 피고 벚꽃은 3월말 4월초에 피기 때문에 경쟁관계라기 보다는 보완관계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시구레테이(時雨亭)로 간다.
   
시우정이라면 비올 때 찾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현재 차를 팔고 있다.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것은 하세이케(長谷池)라 불린다. 그러나 이 연못의 원래 이름은 연지(蓮池)였고, 시우정도 렌치오첸(蓮池御亭)이라 불렸다. 그러므로 시우정은 번주가 성을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한 장소로 보면 좋겠다.

히사고이케(瓢池) 주변의 정자와 식당

 히사이고이케와 가이세키토
히사이고이케와 가이세키토이상기

시구레테이를 나오면 길은 자연스럽게 히사고이케로 이어진다. 히사이고케는 표주박(瓢) 모양의 연못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폭포도 있고, 탑고 있고, 정자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특이하다. 폭포는 비취빛(翠)이고, 탑은 바다돌(海石)으로 만들었으며, 정자는 저녁의 얼굴(夕顔)이다. 일본말로 하면 미도리다키(翠瀧), 가이세키토(海石塔), 유가오테이(夕顔亭)다.

미도리다키는 가스미가이케에서 흘러온 물이 히사이고이케로 떨어지면서 생긴 폭포다. 물이 발(簾)처럼 넓게 퍼져 떨어진다. 주변에는 이끼가 번성해 고색창연하게 느껴진다. 가이세키토는 우리 개념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탑이다. 옥개석으로 보면 5층탑인데, 탑신석으로 보면 2층탑이기 때문이다. 유가오테이로 가기 전 우리는 연못에서 헤엄치고 노는 잉어들을 살펴본다. 먹이를 찾으려고 물 밖으로 입을 뻐끔거리며 내밀고 있다.

 유가오테이
유가오테이이상기

유가오테이 역시 현재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겐로쿠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774년에 지어졌다. 건물 내부는 장지문과 다다미로 이루어져 있고, 외부에는 돌과 나무로 만든 수조(水鉢)가 있다. 이 수조는 손을 씻는 용도로 설치되었다. 그 중 야자나무 뿌리와 줄기로 만든 수조가 재미있다. 정자 옆에는 미요시안(三芳庵)이라는 식당이 있다. 이곳은 가가(加賀) 요리 전문점으로 알려져 있다. 가가 요리는 가나자와의 향토음식이다. 

연못 위 작은 동산에서 잠시 비를 피하다

우리는 이제 계단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작은 동산으로 사자에야마(榮螺山)이라 불린다. 사자암이 있으며, 겐로쿠엔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곳에서는 가스미가이케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다. 연못에 비치는 봉래섬의 반영이 정말 좋다. 그리고 연못 건너 소나무의 모습도 참 좋다. 산 정상에는 3층석탑도 있다. 목탑이 많은 일본에서 석탑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지만 이건 후대에 만들어져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

 가스미가이케에 떨어지는 비
가스미가이케에 떨어지는 비이상기

그런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 들기는 했지만, 맞아도 될 정도다. 가스미가이케 연못에 빗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그에 따라 내 마음에도 파문이 인다. 겐로쿠엔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다른 느낌을 주려는 모양이다. 나는 발길을 재촉하며 연못가를 따라 걸어간다.

내려오는 길에 정원을 가꾸는 인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물 뜯는 처녀 같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삿갓을 쓰고 흰 토시로 팔까지 가리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처음 출발했던 안내소로 나와 우리 일행을 만난다.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지났다. 1시간에 겐로쿠엔을 주파하다니 이건 여행이 아니라 달리기다. 많은 것을 보았지만 음미하면서 즐기지는 못해 아쉽다.
#겐로쿠엔 #가나자와성 #가스미가이케 #지도세다이 #히사고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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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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