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시골 집 화단에서 내가 삽질을 하자 아내가 정성스럽게 빨간 장미와 노란 장미를 심었다.
최오균
약혼식을 치르고 나서 늦은 오후에 나는 다시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엄형, 늦어서 미안하우. 별일 없었소?""미안하긴, 아무 일 없었어요.""덕분에 약혼식을 잘 치렀어요.""허허, 최형, 여전히 날 놀리려는 모양인데 난 절대로 안 속아.""하하, 믿지 않아도 별 수 없지. 하여튼 업무가 끝나면 내가 약혼식 기념으로 한 턱 쏠 테니 그리 아시오.""대포? 그거야 좋지."당시 엄형과 나는 정종대포를 좋아했다. 그 날 업무가 끝나고 엄형에게 나는 정종대포를 한 잔 샀다. 따끈한 정종 대포를 마시며 나는 약혼식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엄형, 정말이야. 나 오늘 약혼 했어.""허허, 최형 끝까지 날 놀리려는 거요? 그럼 약혼식을 했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나? 뭐, 약혼반지라든지." "약혼반지 같은 건 없고, 우린 약혼예물 대신 정희씨의 화단에 장미꽃으로 약혼 기념식수를 했어요.""크크, 그거 봐. 그게 바로 최형이 나한 테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야. 약혼 예물로 장미꽃을 심다니 삼척동자라도 믿지 않겠는 걸. 크크.""정말이라니까. 정 믿기지 않으면 오늘 밤에 나하고 정희씨의 집으로 가서 우리가 심은 장미꽃을 확인 볼까?""좋아. 못 갈 것도 없지. 그 대신 거짓말이라면 어떡할 거요.""엄형이 하라는 대로 하지 뭐. 만약 사실이라면 엄형은 나 한 테 뭘 해줄 거야?""뭐, 대포 한잔 멋지게 사지.""그럼 지금 정희씨의 정원에 심은 장미꽃 나무를 확인하러 가 보자고."약혼 예물로 정한 건, 장미꽃 나무 두 그루엄형과 나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다 보니 꽤 취해버렸다. 술김에 뭘 못할까? 남자들은 술을 마시면 없던 용기(좋게 말하면 용기이지만, 이건 객기다)를 낸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술김에 정희씨의 집까지 가고 말았다. 밤하늘엔 달빛이 교교하게 비추이고 있었다. 대문 앞에 들어서니 백구가 컹컹 짖어댔다.
밖이 소란해지자 집 안에서 정희씨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우리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늘 약혼식을 치른 사람이 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치니 그럴 수밖에. 정희씨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고, 어쩐 일이세요? 이 밤중에….""허허, 그렇게 되었어요. 미안해요. 이 분은 내 직장 동료 엄달포씨라 하오.""처음 뵙겠습니다. 엄달포입니다.""네에...""자, 엄형 여길 보라고. 이 장미꽃이 오늘 우리들이 심은 약혼 예물이오.""어? 정말이네!""이젠 인정하겠나?"밖이 소란해지자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셨다.
"장인어른, 밤늦게 죄송합니다.""아니, 밖에 있지 말고 어서들 안으로 들어와요."장모님의 재촉에 우린 안방으로 들어가 장인어른께 넙죽 절을 했다.
"장인어른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만우절 날에 내가 약혼식을 했다는 말을 믿지 않아 술김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엄형과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 장인어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편하게들 앉아요. 남자들이란 그럴 수도 있지. 여보, 뭘 해 어서 술상을 차리지 않고.""아아… 아닙니다. 이제 이 친구에게 확인을 시켜 주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 그냥 보낼 수 있나. 술이라도 한 잔 하고 가야지."장인어른이 만류하며 붙드는 바람에 우린 야밤중에 장인어른과 함께 술을 한잔씩 마셨다. 만우절 날에 약혼식을 하는 바람에 벌어진 에피소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곧 만우절이 다가온다. 이번 만우절은 아내와 내가 약혼을 한 지 벌써 마흔 세 번째 해가 되는 날이다. 해마다 만우절이 다가 오면, 아내와 나는 우리가 약혼예물로 심었던 장미꽃나무와 약혼식날 밤에 일어났던 소동을 떠올리며 고소를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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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날 올린 약혼식, 왜 아무도 안 믿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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