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대한민국의 지역주의와 공동체의식을 이야기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말입니다. 또한 지연과 학연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관료사회의 적폐를 드러내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집단주의는 개인주의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가족주의는 또 뭘까요?
MBN 뉴스
"우리는 말이야, 시간 하나는 정확하게 지키지!"
이런 말, 아마 여러분들 주위에서도 흔히 듣는 말일 겁니다. 제가 보기엔 주로 남자들이, 연령대는 40대 이상에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누구를 뜻하는 말일까요? 그가 속한 회사나 동호회? 아님 그 나이 또래나 자기 가족을 이르는 말일까요? 또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흔히 경상도 사나이들의 짙은 우정과 동료의식을 대표하는 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뜻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의식을 끌어내는 말 일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 그대로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마음 언저리에 항상 홀로 존재하는 '나'가 아닌 '무리 속에서의 나'라는 관념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엔 한국인 만의 독특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가족주의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우리'라는 말도 자세히 뜯어 보면 그 형체가 불투명합니다.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히 '나'를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단어의 사용에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며 때로는 '나'로 행동을 할까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이번에는 지난 기사에 이어 대한민국을 비롯한 서구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기사 : '삼고초려'가 서양에서 안 통하는 이유).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개인주의를, '개인 간의 구속력이 느슨한 사회(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직속 가족을 돌보면 되는 것)의 특성으로, 집단주의를 '태어날 때부터 줄곧 개인이 강하고 단결이 잘된 내집단에 통합돼 있으며 평생 동안 무조건 내 집단에 충성하는 대가로 그 집단이 개인을 계속 보호해 주는 사회'라고 정의하며 각국의 개인주의 지수를 탐구했다고 합니다(38쪽).
재미있는 것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는 부유한 것으로, 그렇지 못한 나라는 가난한 것으로 분류가 되는데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등이 상위권이며 한국, 대만, 칠레, 과테말라 등이 하위권으로 나타납니다.
호프스테더의 주장은, 서양과 동양의 부의 격차를 개인주의 지수로 부의 설명하고 있어 그의 연구방법과 철학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주의적이며 인간을 본질주의로 접근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연구는 학자들 간에 문화 간 소통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고 하니 나름대로 장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개인주의란?그럼 현재 한국인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할까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할까요? 저는 당연히 집단주의 성향이 가깝다 생각합니다. 앞서 얘기한 '호프스테더'의 정의를 따르더라도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한국인들은 지난 역사에서 격랑의 시간을 보내며 집단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제와 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보다 공동체의 운명에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잘 살기' 위해 위로부터 내려온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의 본성이란 것은 항상 집단주의에 가려질 수 밖에 없었죠. 그러니 개인의 자유를 논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가로막는 방해세력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경제가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자 우리나라는 비로소 정치,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여러 나라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시도하게 되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컵 개최 혹은 각종 엑스포와 국제영화제 등은 그 부산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은 이제야 개인을 회복해가기 시작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처해 있다.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개인주의엔 '객관'과 '연관'과 '일관'이 없다. 모든 걸 자기 위주로, 파편화된 인식 구조로, 지속성이 없는 감성만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43쪽).'세계 속의 한국인'은 이제야 개인을 회복해 가지만 서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개인주의라는 말 자체가 우리에겐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나 밖에 모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의 개인주의가 개인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식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거죠.
그럼 '개인주의'란 서구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그렇다면 일찍이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내고 돌아온 지배층의 사람들이 개인주의자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강연이나 토론회에서 한국인의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동창회나 정당 모임에 가서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국인은 '개인주의나 집단주의'의 이분법으로 파악하기 힘든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개인주의는 독특합니다.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특이한 상황에서는 서구 못지않게 개인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 개인주의란 바로 가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주의입니다.
한국인의 개인주의 = 가족주의?최근 가장 뜨거웠던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황정민과 김윤진이 주연으로 나왔던 <국제시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가족'이란 짐을 벗어놓지 못한 한 가장의 고난과 아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바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주의에 대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