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 앞에 선 가족신문 편집장과 꼬마 기자.
김병기
영산강 하류, 중류, 상류를 현장 조사한 가족 취재단은 도곡 온천의 한 여관에서 강바람으로 지친 몸을 녹였다. 여행 셋째 날 오후에 찾아간 곳은 천불천탑의 사찰 운주사였다.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석탑이 한 절에 다 들어갈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건 상징이 아니라 실제였다. 천 개, 그 이상이었다.
"아빠, 여기도 불상이 있어요!""이건, 탑!"
그 많던 석공들은 어디로?녀석들은 일주문에서부터 보물찾기하듯이 샅샅이 뒤졌다. 숲 속과 계곡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불상들이 신기한지 감탄사를 날렸다. 석탑은 과격하게 형식을 파괴했고 탑신은 사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원형 석탑도 입구에 있었다. 부처님도 늘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고정관념이었다. 나란히 누운 두 개의 와불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 기자는 이런 기사를 날렸다.
"<불상을 다듬던 석공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 천분의 부처님이 계신 곳인 만큼 다양한 형상과 표정을 가진 부처님들이 우릴 맞아 주셨다. 하지만 무상하게도 세월은, 돌부처님에게도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머리가 없는 부처님, 몸이 없는 부처님, 깎이고 깎여서 흔적만 겨우 알 수 있는 부처님 등. 고려시대 운주사를 지을 당시, 이곳은 여러 석공이 모여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돌을 다듬어서 자기만의 부처님을 만들었을 것이다. 얼굴이 넓적한 석공은 넓적한 부처님을, 잘 웃는 석공은 잘 웃는 부처님을, 덩치가 우람한 석공은 커다란 부처님을. 모두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며 정을 담아 만들었을 텐데, 하늘나라로 간 그 석공들이 자기가 만든 돌부처님이 이렇게 부서지고 스러진 걸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엄마 기자는 석공의 마음을 헤아렸다. 아빠 기자는 서민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족신문에 쓴 엄마와 아빠의 기사.
김병기
내 안의 부처"<운주사에서 목격한 '내 안의 부처'>뭉개진 코, 떨어져 나간 귀, 하회탈 같은 얼굴……. 운주사에서 목격한 수많은 석불은 한결같이 서민의 형상이다. 일주문을 지나 고려시대 최고봉이라는 보물 9층 석탑 아래에도 서민 형상의 한 석불이 살포시 웃고 있다. 조그마한 실개천 돌 틈에도 청동색 이끼를 뒤집어 쓴 석불이 미소를 짓고 있다.
석탑도 형식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맷돌을 들어 올린 듯한 원형석탑이 보란 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항아리를 여러 개 올린 듯한 발형다층석탑도 있다. 거북바위 위에는 병풍처럼 7층 석탑이 새겨있다. 어디 이것뿐인가? 민이와 영이가 한 석불 옆에 자그마한 돌로 세운 7층, 5층 석탑도 있다.이리 봐도 석불, 저리 봐도 석탑이다. 아이들이 보물찾기하듯 뜀박질하면서 찾아낸 그 형상을 보고 있자니, 대웅전에 모셔놓은 근엄한 표정의 금부처에서는 볼 수 없는 나의 모습이자 서민의 모습이다. 운주사에 가거든 돌멩이 함부로 차지 마라." 그런데 편집장은 달랐다. 엄마, 아빠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유쾌·통쾌·상쾌했다. 천 개의 탑이 모두 다른 모습이듯이 녀석은 교과서와 팸플릿에 나온 천불천탑을 주목한 게 아니라 더 신기한 것을 기삿감으로 올렸다. 인간이 만든 '똥탑'!
신기한 해우소
▲운주사 해우소 기사.
김병기
"<운주사의 신기한 화장실 '해우소'>우리 가족은 화장실에 오줌을 싸러 갔다. 화장실은 '해우소'라 불렸다. 해우소에 있는 변기를 봤다. 그 순간 난 눈이 소 방울처럼 커졌다. 내 눈이 왜 커졌을까? 화장실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밑을 보니 너무 아찔하고 더러운 똥과 오줌, 오물이 섞인 구역질 나는 것이 밑에 있었다! 옛날식 화장실이라 그걸 거름으로 쓴다. 그래서 냄새도 약간 났다. 난 그런 화장실은 처음 본다. 운주사에 독특한 해우소가 있다니, 참 놀랍다. 그런데 진짜 그걸 거름으로 쓸까?"가장 생생했다. 녀석의 눈에 비친 해우소처럼 시각도 독특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아빠에게 계속 물어봤다.
"아빠, 진짜로 그걸 우리가 먹는 배추에 뿌려요?" "그럼! 입 속으로 들어갈 때는 모든 게 맛있어 보이는데 몸은 똥 제조공장이여. 이것들이 들어가서 몸에 영양분을 주고, 찌꺼기는 소장과 대장을 거쳐 똥으로 나와. 그게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고, 거름이 돼서 식물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먹는 거에도?" "응. 사람도 마찬가지야. 죽으면 땅속에서 썩고 거름이 되어 식물들을 키우는 거여. 그러니까 더럽다고 똥을 무조건 싫어하면 안 돼!" "어휴~" 고양이 권법바람에 깎이고 비에 쓸리는 운주사 돌부처는 수천 년이 지나면 가루가 되어 식물의 뿌리를 타고 흡수되거나 인간의 몸 속에 녹아 흐르고 있다. 그렇게 돌부처의 일부는 우리 가족의 DNA 속에 담겨 있다. 그러니까 운주사에 가거든 돌멩이 함부로 차지 마라. 왜냐고? 거기에는 부처님 같지 않은 부처님, 탑 같지 않은 탑이 많다. 그 속에 우리도 있다.
편집장은 운주사에서 무려 4개의 기사를 썼다. 조용한 산사에서 기삿감을 낚아채는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편집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더 의욕을 부렸을 수도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한다.
"난 '발형다층석탑'을 봤을 때 항아리를 거꾸로 올린 모양 같아서 '거꾸로 항아리 석탑'인 줄 알았다. 항아리처럼 생긴 돌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는 항아리 뚜껑도 있다. 탑 앞 설명판에는 '주판알 같다'고 쓰여 있는데, 항아리로 보면 항아리고, 주판알로 봐도 주판알 같은 이상한 석탑이다.""난 나만의 고양이 권법으로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거기에 거대한 정체불명의 바위가 있었다. 위에서 제대로 보니 누워있는 부처님이셨다. 한 부처님은 왼손을 들고 계시고, 또 다른 부처님은 오른 손을 올리고 계셨다. 부처님은 언제 일어나실까?" 비우는 게 채우는 것이다
▲돌로 쌓은 탑 앞에 선 막내 기자.
김병기
녀석들과 함께 운주사 일주문을 나오면서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불가의 말을 떠올렸다. 비우는 순간 그 자리에 묘하고 새로운 게 채워진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듯 매 순간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는 말이다. 지금 나의 손에 움켜쥔 '그것'을 붙잡고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다. 지금 나의 머릿속에 꽉 들어찬 '그것'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생각을 채울 수 없다.
기존 형식을 파괴한 운주사 천불천탑도 비움의 정신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이다. 비우지 않으면 서서히 썩어간다. 비우고 채우는 것을 반복할 때에 나날이 새로워진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처럼(長江後浪推前浪). 고양이 권법으로 삶의 거대한 바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한 녀석들의 가슴 속에 운주사 천불천탑을 모셔두고 싶다. 어느덧 비우는 것이 두려운 50대, 내 가슴에도.
"엄마, 이 부처님은 눈이 축 처진 게 아빠 같네요."고려시대에도 나를 빼닮은 석공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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