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들어 올린 4160개 촛불지난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미국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 사건은 2015년 대한민국에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수언론이 태극기를 불사르는 한 청년의 사진을 보도한 이후, 보수단체는 "경건해야 할 세월호 추모식이 폭력 추모식으로 변질됐다"며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고, 경찰 역시 검거를 위해 신원파악에 주력 중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미국과 같은 표현의 자유 수준을 기대하는 것을 무리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각의 반응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를테면 지난 2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있었던 김진태(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1주년 범국민대회를 거론하며 "'성완종 리스트 정쟁' 때문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태극기가 불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불태운 것인데 이를 방치하면 이게 국가냐"라고 외쳤다.
태극기가 불탄 이유가 성완종 리스트 때문이라는 것인지, 성조기 방화를 용인하는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300여 명의 생명이 수장되고 있던 상황에서 너무나도 무력했던 국가의 모습에 "이게 국가냐?"를 외쳤던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세월호 인양에 반대했으며, 남은 실종자 9명의 유가족에게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김진태 의원 아닌가? 수장되는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국가고, 태극기 방화를 방치하면 국가가 아니라는 이런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킬 것은 태극기인가, 진정한 국가인가 우리에겐 미국보다 국가정체성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태극기 역시 국가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국가정체성이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단지 태극기 그 자체일 뿐인가?
국가의 최우선적 책무는 국민의 안전 보장이다. 세월호 참사가 국민에게 충격을 던진 이유는 이것이 단지 하나의 '사고'나 '사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과정에서 국가를, 국가의 책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단지 사건 자체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자신의 원초적 책무를 방기하는 국가에 대한 분노였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눈에는 태극기가 타들어가는 것만 보이고, 성완종 리스트에 나타난 고위급 정치인들의 부패, 여전히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당연한 조문조차 막아서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공권력의 모습에 타들어가는 국민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가? 당장 정권이 위기에 몰렸다고, 태극기 방화 사건을 확대·재생산하여 당사자를 추적·검거하면서 국면전환에 성공하면, 국가의 위신이 바로 서는가, 국가의 정체성이 존립되는가?
우리가 지켜야할 것은 단지 태극기가 아니다. 태극기가 상징해야 할 국가정체성은 위험에 처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패막이다.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면, 국가 스스로 나서 진상을 확인하고 재발방지를 확실하게 세워놓는 책임감을 보여야 했다.
이 사회의 썩은 부정부패의 단서가 잡혔다면, 국가가 나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린 생명들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이 있었다면, 국가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 국회의원이라면, 부끄러움을 먼저 느껴야 했다. 그럴 때 태극기는 단지 종이나 천 조각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국기로 우뚝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