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샨티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마을'이라는 낱말은 "살림집이 여럿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킵니다. '동네'는 '洞 + 네'입니다. '동네'는 '洞內'에서 말꼴이 바뀌었다고도 하지만, '형네'나 '할머니네'처럼 '-네'를 붙였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마을'이라는 낱말만 썼으나, 시골살이가 사라지는 곳, 이른바 '도시'가 생기면서 한자를 빌어 '동네'라는 낱말을 새로 지어서 썼다고 여깁니다. 오늘날에는 '뉴타운' 같은 영어를 쉽게 쓰지만, 일제강점기 언저리와 해방 뒤에는 으레 한자로 새 낱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그러니까, 오래된 삶터에서는 수수하게 '마을'이라는 낱말을 쓰는 셈이요, 새로운 문명과 사회를 보여주려고 하는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써서 둘을 가르려고 하는 셈입니다.
.. 임유화씨는 아파트가 한 칸 한 칸의 사적 재산물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집합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이 속속 판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성미산마을은 점점 더 흥미로운 곳이 되어 갔다 … '어울려서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이 주방에서 시작해 마을로 이어진다 .. (15, 29, 47쪽)'두레'를 엮으려는 움직임이 나라에서까지 일어납니다. 한자말로는 '협동조합'이라고 하는데, '협동조합'은 일본에서 지은 낱말입니다. 협동조합 운동도 일본에서 불거졌습니다. 나라에서 정책으로 협동조합 바람을 일으키기 앞서,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을 벌였습니다. '두레 생협' 같은 이름을 쓰는 곳도 있었는데, 생협이든 협동조합이든 한국말로 가리키면 '두레'입니다.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여럿이 함께 큰일을 할 적에 '두레'를 합니다. 두레를 모임으로 엮지요. 그런데, '마을'이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태어났고, '두레'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나타났습니다. 도시에서는 흙일을 하지 않는데, 외려 도시에서 '마을 살리기'나 '마을 만들기'를 벌이고, '두레'라는 모임을 엮으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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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이웃랄랄라가 어떻게 마을공동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웃랄랄라는 분명 마을공동체다. 스스로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 이런 과정에서 은실이네만의 철학도 생겼다. 조금 벌더라도 일을 많이 하지는 말자 … 마을에서는 곧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대도시들은 이런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 곽수경 씨는 자신이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마을의 청소년들도 언젠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59, 68, 78, 204쪽)박재동·김이준수 님이 빚은 이야기책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샨티,2015)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마을 살리기'를 알차면서 예쁘게 잘 하는 스무 군데 마을을 찾아다닌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서울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마을이 스무 군데뿐이겠습니까만, 이 스무 군데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마을이 자라기를 비는 마음일 테고, 다른 모든 예쁜 마을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꿈꾸는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책을 찬찬히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왜 마을 살리기를 할까요?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마을 살리기를 한다고 한다면, 마을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하는 까닭이라면, 마을이 죄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앞뒤가 어긋난다고 해야 할까요,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요, 197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아직도 깃발이 나부낍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새마을 운동 깃발을 내걸어야 합니다. 시골 군청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고, 도시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새마을 운동 바람이 일고 난 뒤부터 '마을이 죽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시골에 있던 수많은 마을을 깡그리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도시에 있던 달동네도 하나둘 짓이겼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갑고 고요하게 숨쉬던 마을살이를 몽땅 내쫓으려고 하던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벌이면서, 풀집과 흙집을 허물었습니다. 제비집도 까치집도 허물었습니다. 마을 고샅길을 시멘트로 덮었고, 논둑도 시멘트로 덮으며, 논도랑도 시멘트로 덮었지요. 비료와 농약과 비닐을 쓰도록 부추긴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주택을 짓게 시키고, 새마을 모자를 쓰게 시키며, 새마을 수련원을 세워서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 시민'을 키우려고 닦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