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없는 길이 무척 길지만, 군데군데 후박나무가 몇 그루 자란다.
최종규
나무가 있건 없건 나 스스로 마음을 곧게 다스린다면 홀가분하거나 즐거울 만하리라 본다. 그런데, 나무가 있는 길과 없는 길은 매우 다르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라 하더라도 그늘이 드리우는 나무라면, 이 나무 곁을 스치고 지나갈 적마다 '아, 시원하네' 하고 느낀다.
시골에서는 논이나 밭에 그늘이 진다면서 나무를 모조리 벤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을 텐데, 새마을운동 뒤부터 이런 짓이 널리 퍼졌다. 바닷가조차 나무가 몇 없다. 바람막이 나무가 없는 바닷가도 있고, 마을에서도 바람막이 구실을 할 나무가 없기 일쑤다.
나무가 우거져서 그늘을 짙게 드리우면 햇볕을 덜 먹는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해님은 하늘을 가로질러서 골고루 비춘다. 해는 빛뿐 아니라 볕을 베푼다. 햇빛을 덜 받아도 햇볕은 늘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무가 서기에 드센 바닷바람을 많이 막아 줄 뿐 아니라, 나무뿌리가 흙을 단단히 움켜쥐고, 나무 둘레로 여러 풀이 골고루 자라서 거센 빗줄기에도 흙이 덜 쓸린다. 나무는 열매와 꽃을 사람한테 베풀고, 그늘을 주며, 푸른 숨결(바람)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흙이 한결 기름지도록 북돋아 준다. 이러면서 땔감을 주고, 커다란 나무는 제 몸을 바쳐서 사람이 집을 짓도록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