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잊혀진 정겨운 모습들 : 여물 먹는 물소와 병아리들과 함께하는 암탉
이규봉
평지로 15킬로미터를 달리니 급한 오르막이 나온다. 계속 5킬로미터 정도 아주 힘겹게 올랐다. 중간 중간 우리가 잊고 살았던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내 어렸을 적 자주 보았던 모습이다. 암탉이 병아리와 함께 다니며 모이를 먹고 함께 노는 모습, 소들이 송아지와 함께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다. 그 때는 가축과 사람이 적어도 농촌에서는 자연스럽게 함께 살았다.
바로 이런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물소들이 송아지와 더불어 거닐고 여물을 먹고 있으며 암탉이 병아리와 같이 노는 모습이 너무도 정겹다. 어렸을 적 많이 봤던 이런 풍경이 경제성장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요즘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이런 풍경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암탉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된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책에서만 보았지 직접 본 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륜을 어기고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요즘은 어미닭이나 어미소가 아닌 공장에서 병아리와 송아지를 사육하고 있다. 자라나는 것은 보지 않고 공장식 축산에 의해 생산되는 고기만 대하고 있으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가축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에 무감각하게 자라날 것이다. 닭이라는 명칭은 치킨이라는 음식 이름으로 바뀐 지 오래고, 소, 돼지 대신에 등심, 목살, 삼결살 등으로 바뀐 지 오래다.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한 인간의 생명도 경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베트남 오지에서 웬 김치800미터의 고개까지 오르고는 그 다음부터 오늘의 목적지 손라(Son La)까지는 계속 내리막이어서 주행이 아주 순탄했다. 1시 좀 넘어 도착하니 높이 솟은 하노이 호텔이 보였다. 손라에 하나 밖에 없는 별이 세 개인 호텔이다. 오늘은 좀 좋은 호텔에서 머무르자 하여 가격을 알아보라 했더니 50만 동이라 한다. 좀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날씨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며칠 다니다 보니 하루정도는 좋은 잠자리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 다음날 출발하려 할 때 생각도 못한 일이 생긴다.
호텔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분명 김치 냄새가 났다. 그것도 잘 익은 냄새가. 둘러보니 옆 좌석에 김치가 담뿍 놓여있다. 아니! 베트남 오지에 있는 마을의 식당에서 웬 김치가! 흘끔흘끔 여러 번 쳐다보는 우리를 의식했는지 우리말을 하며 김치를 나누어준다. 우리나라에 노동자로 와서 한국말도 배우고 김치 맛을 알았다고 한다. 이 김치도 자신이 직접 담은 거라고 한다. 맛은 정말 좋았다. 집에서 담가 먹은 맛과 너무 비슷했다. 우리도 보답을 하려했더니 괜찮다며 받지 않는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베트남 사람이 우리말을 하다니! 게다가 김치까지 주다니! 정말 반가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