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임 후 밀짚모자를 쓴 노무현
사람 사는 세상
나는 서울생활 40여 년 중, 대부분을 종로에서 살았다.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 때 노무현은 종로에서 출마했다.
그때 종로는 정치1번지답게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후보, 통합민주당 노무현 후보, 그밖에 김을동, 정인봉 후보 등 쟁쟁한 정치인들이 각축을 벌였다.
나는 한 유권자로 어느 날 종로5가 효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합동유세장을 찾아가 쟁쟁한 후보자들의 열변을 경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노 후보의 정견발표는 마지막 순번으로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후보 연설이 끝나자 동원된 청중이 반 이상 빠져나간 썰렁한 유세장에서 열변을 토한 후 쓸쓸히 돌아서는 그분의 뒷모습이 두고두고 삼삼하게 그려졌다.
그는 쉬운 선거구를 두고, 연고가 전혀 없는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3당 합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지역을 볼모로 하는 망국적인 적폐를 타파하고자 정치1번지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당시로서는 달걀로 바위를 치는 그런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때뿐 아니었다. 그 뒤로도 그분은 쉬운 길을 두고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바보처럼 일관되게 걸었다. 그런 선구자 정신이 아마도 그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경남 안의(함양) 출신 노응규 의병장이 노무현 대통령 종증조부입니다."이 박사가 오랜 침묵을 깨트리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가계를 얘기했다.
"아, 네. 그런 의병장의 후예라서 그런 강단이 나왔나 봅니다.""왕대 밭에 왕대 나지요."이 박사의 대꾸였다.
봉하마을로 가는 길목은 6주기 추모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도로에는 노란 바람개비가 세워지고, 마을에는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 모든 것을 봉하마을 뒷산의 부엉이바위와 건너편 사자바위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태룡 박사는 당신의 저서와 국화송이를, 나는 국화송이를 제단에 바치며 깊이 고개 숙였다.
나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68)
"'그저 그런' 대통령으로 남으렵니까(2005. 1. 11)"에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퇴임 뒤 소줏잔을 나누면서 허심탄회하게 대담할 기회가 있기를 간곡히 바라면서…."라고 소박한 만남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일이 있을 줄이야.[관련기사 :
당신은 정말 행복하신 분입니다(2009.3.14) 이제 우리도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가졌습니다(2009. 5. 27)]
봉하마을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김해 시내 한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