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한옥체험관
박도
젊은 날 지겹도록 한 수업이지만 이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오늘이 '마지막 수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그 결과는 어떨지? 그 판단은 어디까지나 학생들 몫이다. 오늘은 첫날 강의 때보다 더 일찌감치 나섰다. 박물관 역에서 경전철을 탄 뒤 가야대 앞에서 내렸다. 대학 앞 밥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가야대학으로 갔다.
엊그제와 같이 '가락관' 같은 308호실에서 창작실기 특강이 있었다. 이날은 '말과 글의 중요성' 예화로 미국의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크게 주목받지 못한 할리우드 출신 배우가 백악관 주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그의 달콤한 연설 솜씨였다는 얘기와, 조선조 광해군 때 허균의 예화를 들었다. 광해군 시대 장안의 갑부는 현재 아는 이가 없어도 허균의 <홍길동전>은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예술은 길다"는 얘기였다.
나는 가능한 낮은 자세로, 솔직한 체험 얘기로 강의하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는데 초점을 맞췄다. 경상도 구미 벽촌 금오산 기슭의 소년이 학교 선생님과 작가가 되고자 꿈꾸었던 얘기와, 서울에서 고교를 다니다가 가정사정으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죽으려 하다가 한 장애인을 만난 뒤 주머니 속의 알약을 버리고 새 삶의 의욕을 가졌다는 얘기를 했다.
새로운 출발로 신문배달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때때로 신문을 대문 틈으로 넣고 나면 갑자기 집안에서 개들이 대문 밖으로 뛰쳐나와 바짓가랑이를 물었다. 그때 그들의 주둥이를 워커 발로 차면서 "X놈의 개XX! 너희마저 사람 차별을 하느냐! 나는 장차 신문사장이 될 거다"라고 큰소리 쳤다는 그런 허황된 꿈 얘기를 했다. 나는 그런 꿈 탓인지 교사로 33년 지냈고, 작가로 30여 권의 책을 펴냈으며, 시민기자로 10여 년 1천여 꼭지의 기사를 쓰면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도 내 돈 들이지 않고 여러 차례 다녀왔다는 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