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권교육 '열외 무'지난해 8월 8일 오전 육군 30사단 기갑수색대대 장병들이 부대 내 대강당에서 특별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군 복무 중 이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유족 측이 확보한 녹취록과 헌병대 수사기록 등 간접적인 자료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2012년 8월 28일, 이씨는 충청북도 증평의 37사단으로 입소했다. 신병교육대에서 복무 적합도, 군 생활 적응, 적성 적응도 등을 분석하는 '신(新)인성검사'에서 이씨는 자살 및 정신장애예측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씨는 귀가 조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국군대전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특이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그대로 신병훈련을 받게 된다.
2012년 10월 5일, 이씨는 경상북도 영천 소재의 제2탄약창 경비대로 배치됐다. 전입하면서부터 자살우려 병사로 분류되었지만, 부대 자체로 실시한 복무적합도 검사와 국군대구병원 정신과 진료 결과는 특이사항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전입 후 실시한 간부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이씨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이상증세를 보였다.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는 전입 직후부터 시작됐다. 헌병 수사기록에 따르면 전입 바로 다음 날인 2012년 10월 6일 점심시간 전, 이씨가 소속된 경비중대 선임병 4명이 이씨를 비롯한 신병 4명을 생활관에 집합시켰다.
선임병들은 이씨 등에게 연가서열(중대원 70명의 계급, 이름, 입대연월), 초병의 일반수칙, 특별수칙, MOPP(임무형 보호태세), 부대 내 책임지역(울타리 길이 등), 전조등, CCTV, 철주(철조망 지탱하는 기둥) 개수가 적힌 수첩을 나누어 주면서 "2주 안에 다 외워라"고 지시했다.
암기에 서툴렀던 이씨는 주어진 기간 중 암기사항을 다 외우지 못했다. 초병 근무 중 방탄모와 총기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한 것도 폭행의 빌미가 되었다.
2012년 10월 중순 암기사항을 잘 답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 선임병이 욕을 하며 이씨의 머리를 2, 3회 때린 것을 시작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폭행이 이어졌다. 선임병들은 후임들을 집합시킨 후, 군기를 잡는다며 몰아세웠다. 군대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이씨가 이들의 주된 타깃이 되었다.
가해병사들은 '암기를 못했다', '근무지에서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갖은 욕설과 폭행을 했다. 이씨가 소속된 부대에서는 선임병들의 폭행 등 병영부조리를 근절하겠다며 계급별로 생활관을 편성하는 동기생활관 제도를 시행했지만,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폭행이 이어질수록 이씨는 더 주눅이 들었고, 실수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헌병 보고서를 보면 지휘관들은 이씨에게 가한 일부 폭행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경, 근무 중 혼자 흥얼거리고, 총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손바닥으로 이씨의 뺨을 때렸던 한 선임병이 중대장에게 얼차려와 구두 경고를 받았던 것. 같은 달 이씨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은 다른 병사도 역시 얼차려와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이씨를 괴롭힌 가해자들에게 엄정한 처벌을 하지 않았다. 2012년 11월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수리에서 이씨가 근무 중 졸았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폭행을 당한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이씨를 괴롭힌 선임병들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전투화 발로 이씨의 다리를 여러 차례 걷어 찬 가해자는 부사관 지원을 희망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기도 했다. 만약 이때 가해자들을 색출해서 제대로 처벌했더라면 이씨에 대한 폭력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병사들 간의 폭행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이씨가 이등병 당시의 중대장 A 대위에 대해 이 부대의 한 간부는 헌병 조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약 11개월 동안 단 한번도 경계근무 순찰을 나간 적이 없고, 매일 같이 출근하면 잠자고 점심 때 라면을 끓여먹고 잠자다가 일어나서 퇴근했다"고 진술했다.
한 병사는 "(중대장이) 병사들과 면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1주일에 한 번 정도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볼 정도로 만나기 힘들었으며, 일과 중에도 체육복을 입고 다녔고 마주치게 되어 경례를 하면 '너 우리 중대야? 날 어떻게 알아? 내가 숨어 다녔는데 날 알아?'라고 할 정도로 중대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가혹행위와 폭언... 심각해진 정신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