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녹색의 옥수수가 자랐어야 정상이다. 금년 옥수수 농사는 이미 글렀다.
신광태
"집수정엔 물이 많은데, 마을에 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막혔겠죠."느닷없는 군수질문에 궁색한 대답을 했다. "뱀이나 개구리가 막았을지도 모르죠." 옆에 있던 이장이 거든다. '무슨 만화 같은 소린가!'라는 생각을 하며 이장 표정을 보니 진지하다.
몇 해 전엔 가뭄도 없었는데, 각 가정 수도꼭지엔 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단다. 원인은 죽은 개구리와 뱀이 집수정 배수구를 막았기 때문으로 판명났다. 먹이인 개구리를 따라온 뱀이 물살에 휩쓸려 동반 죽음을 맞이했다.
"덕분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뱀 썩은 물, 즉 약수를 한동안 먹은 거죠"이번에도 그럴까? 아닌 듯했다. 배수구를 통과한 물은 빠르게 마을을 향해 흘렀다. 근데 왜 40여 가구에 물이 나오지 않을까. 이장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땅속으로 연결했다는 관을 따라 몇 번을 오르내렸다.
"배관이 터져 다 새 버리니까, 마을에 물이 나올 턱이 없지" 군수는 풀밭을 가리켰다. 풀만 무성하게 자란 곳을 자세히 보니 물기가 흥건했다. 집수정에서 마을까지 연결된 배관이 터져 물길방향이 틀어졌던 거다. 삽과 괭이를 동원해 터진 관을 막았다.
"호박과 오이는 물이 생명인데..."호박밭도 시들한 지 이미 오래된 듯했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호박이 성장을 멈췄다.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농산물시장에서 제값 받기 힘들다는 농부는 연실 양동이에 물을 퍼 날랐다. 공무원들이 나왔다는 게 영 귀찮다는 눈치다.
"소형관정이라도 파 보는 수밖에..."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상황. 인근 땅속에 수맥이 흐른다는 보장도 없다. "이곳엔 물이 흐를 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 농부의 표정은 밝아졌다.
최악의 가뭄 속 '물싸움'...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