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영씨의 모습.
김동우
- 고산증은?"없었다."
- 정상에 서는 순간 어땠나?"정상에 꽂혀 있는 십자가를 보는 순간 가슴이 사무치면서 포기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면 되는구나. 그리고 빨리 내려 가야겠다는 생각(웃음). 하산하면서는 함께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멘도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형님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19일 만에 멘도사로 돌아가 보니 이 형님 하시는 말씀이 실종 신고를 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딱 만나는 순간 나 혼자 올라간 게 잘한 일인가란 회의가 밀려들었다. 도전이 중요한 건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건지 갈등이 많았다. 결국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
- 왜, 성공한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나?"이 도전(7대륙 최고봉 도전)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 아니,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똑같으면 어떻게 하나(웃음)."혼자 정상에 섰다는... 죄책감이 진짜 많이 들었다. 그때까진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유지하는 것보다 내 일이 항상 우선이었다. 여자 친구 만날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무척 이기적인 나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아콩카구아가 내 인생에서 최고 경험이 됐다."
- (아콩카구아는) 나에게도 최고의 산이었다. 이 산을 다녀오고 삶의 변화가 생겼나?"여행 뒤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졌다. 특별한 사람이란 느낌...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좀 염세적으로 바뀌었다. 여행이 인생을 바꿔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복학해 보니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엔 책을 써서 이름을 알리고, 인세로 도전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더라. 즐거워서 시작한 여행이 나중엔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 여행이 많은 걸 가르쳐 준거다. 이건 염세적인 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 거다."궁금한 게 있다. 대학 때 세계 일주를 하면 포기해야 할 게 없는데, 직장 그만두고 떠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 지난 책에 이렇게 썼다. '갔다 와서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하는 순간 세계 일주는 내 것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야 한다. 내려놓고 보니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한쪽만 보던 인생을 이제는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게 됐다. 여행이 포기한 만큼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게 먼저다. 나머지(미래)는 하늘에 맡기고, 지금을 즐기면 된다. 긍정적으로…. 그런데 여행하면서 좀 아쉬웠던 건 없었나?"7대륙 최고봉 등정 못한 게 제일 아쉽지만...(웃음) 사실 등산복만 입고 다닌 게 제일 후회된다. 기분 좀 내고 싶고, 클럽에도 좀 가고 싶고, 좋은 레스토랑 가서 밥도 좀 먹고 싶은데 매번 꿀렸다. 옷을 좀 살까도 생각했는데, 짐이 될까 봐 꾹 참았다."
- 트레커는 100g에 목숨 거는 사람들 아닌가. 나도 그랬다. 100% 공감. 자! 자! 자! 우리 2차 갑시다~극지 마라토너와 트레커의 대화파타고니아 여행 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김상현(29)씨를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은 동생이었다.
상현이는 극지 마라토너다. 극지 마라톤은 중국 고비사막, 이집트 사하라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남극 등 4곳에서 각각 250km, 총 1000km를 뛰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