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토끼가 하늘을 깡총 날면서 사라지려 합니다.
보림/데지마 게이자부로
한국에서 여우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여우가 살기에 알맞지 않으니, 여우는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한국에서 늑대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늑대가 살기에 걸맞지 않으니, 늑대는 몽땅 사라졌습니다.
한국에서 사라지는 들짐승이 매우 많습니다. 한국에서 사라지는 숲새도 무척 많습니다. 한국에서 사라지는 딱정벌레도 대단히 많을 텐데, 어떤 딱정벌레가 언제 사라지는지를 깨닫는 사람은 드물리라 느껴요. 그야말로 흔하디흔하던 흰민들레도 한국에서 아주 빠르게 사라져요.
차갑게, 차갑게 반짝이고, 바람마저 얼어붙는 듯합니다. 여우가 몸을 부르르 떱니다. 바로 그때, 엄마 여우와 아기 여우들 모습이 숲 가운데에 떠오릅니다. 여우는 상냥하던 엄마를 생각합니다. (25∼27쪽)
들이나 숲에서 들짐승하고 숲새가 느긋하거나 넉넉하게 살기 어렵다면, 이 나라에서 사람은 얼마나 느긋하거나 넉넉하게 살 만할까요? 들에서 들짐승이 먹이를 찾기 어렵고, 숲에서 숲새가 먹이를 얻기 어렵다면, 이 나라에서 사람은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살 만할까요?
여우나 늑대 울음소리가 사라진 숲이나 들은 괴괴합니다. 온갖 새가 저마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숲이나 들이 없는 곳은 메마르거나 차갑습니다. 들짐승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공사하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숲새가 들려주던 노랫소리는 잦아들고,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소리가 매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