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애초 '김태원'에게 서훈추서 당시 공적 내용. 여기에는 "1926년 7월 20일 벽창의용단원으로 활동 중 만주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피강되어 사형당함"(훈장번호 246)으로 있다. 본적과 나이가 기재돼 있지 않지만 1926년 사형당한 '평북 김태원'에게 훈장을 수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심규상
정부가 애초 '평북 김태원'(1902~1926)에게 준 훈장을 '대전 김태원'(1900~1951)이 가로챘음을 의심하게 하는 입증 자료가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정부가 지난 1963년 3월 1일 김태원에게 수여한 훈장 기록을 최근 확보했다. 정부는 이날 '김태원'에게 건국공로훈장 건국공로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했다. 정부가 당시 '김태원'에게 수여한 공적 내용에는 "1926년 7월 20일 벽창의용단원으로 활동 중 만주에서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사형당함"(훈장번호 246)으로 돼 있다.
본적과 주소는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이는 같은 해 12월 평양감옥에서 사형당한 '평북 김태원'에게 수여된 것임을 짐작게 한다. 실제 1926년 당시 <동아일보>와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은 평북 의주 출신의 김태원이 벽창의용단에서 군자금 모금 등 활동을 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평양감옥에서 사형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정부가 당시 평양 감옥에 수감돼 있다 사형당하기 직전 탈옥했다는 '대전 김태원'이 아닌 '평북 김태원'에게 서훈을 줬음을 뒷받침하는 기사다.
'김태원'에게 수여한 훈장은 한동안 찾아가지 않았다. 이는 평북 김태원의 후손이 없거나 '평북 의주' 출신인 점으로 미뤄 분단으로 인해 남북왕래가 단절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968년 훈장을 찾아간 사람은 '평북 김태원' 가족이 아닌 '대전 김태원' 가족이었다. '대전 김태원' 가족들은 정부가 수여한 '김태원'이 '대전 김태원'이라며 훈장을 찾아갔다.
'대전 김태원'은 이름만 같은 뿐 1926년 당시 언론보도에 등장한 '평북 김태원'과 본적은 물론, 나이와 독립운동 행적, 모친의 성씨까지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의심 없이 '대전 김태원' 후손에게 훈장을 내줬다.
국가보훈처는 아예 '김태원'의 공훈록에 처음 서훈 수여때 '사형당함'이라는 기록을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천우신조로 탈옥에 성공, 그 길로 상해(上海)로 망명했다'고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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