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다 지난 4월 자퇴했던 김다운(17) 양은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어 자퇴했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진주지역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다운
수업시간에 큰 맘 먹고 대자보를 들고 있는 다운양의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다들 놀라워하며 동갑내기 여학생이 남긴 자퇴의 변에 하나같이 공감하더군요. 그 어디든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는 똑같다는 값싼 위안을 서로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자퇴라는 선택에 대해서는 주저했습니다. 한 아이는, 모르긴 해도 성적이 뛰어나거나 유학을 생각할 정도로 집이 부유할 거라고 넘겨짚더군요. 믿는 구석이 있으니 자퇴한 것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다른 한 아이는 자퇴생이라는 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주홍 글씨' 같은 거라면서, 아무런 대책 없이 학교를 벗어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할지언정 선뜻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질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운양은 여전히 '낯선' 존재입니다. 사진을 보고 예쁘다며 키득거리는 몇몇 '개념 없는' 아이들을 나무라려니, 순간 그들도, 또 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벼랑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레밍 쥐들처럼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다운양의 자퇴 이슈는 1년 365일 학교, 집, 학원을 순례하는 아이들의 '평온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퇴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최근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인식 지평이 시나브로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교사의 성찰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자퇴를 결심하기 전 가장 후회되는 일이, 교사들의 '꼰대질'과 '강압'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다운양의 일침에 동료교사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입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를 사제지간이 아닌 '갑을 관계'로 여길 정도로 학교에 상호 불신과 폭력이 팽배해 있다는 지적에 뜨끔한 거죠. 가르침이 '꼰대질'로 여겨지고, 생활지도가 '강압'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라면, 그곳을 더는 학교라 말할 순 없습니다.
동료 교사들끼리 만약 자기가 담임교사라면 자퇴하겠다는 다운양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다들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순순히 그러라고 말하진 못했을 거라더군요. 미래를 책임질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부모님을 찾아가 설득도 하고, 때로는 자퇴생이라는 낙인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등 온갖 '꼰대질'을 해가며 막았을 거라고 이구동성 말했습니다.
비록 교사로서 '몸'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게 될지언정 '마음'은 다운양의 주장에 십분 공감하고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일 겁니다. 지금 고등학교엔 아무런 정의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는 다운양의 냉혹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무릇 교육이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미래'를 꿈꾸고,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일진대, 머리로만 가르치려 했을 뿐 가슴으로 다가서지 못한 점 거듭 사죄합니다.
끝으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외롭고 힘들겠지만, 당당한 삶을 통해 부디 보란 듯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저 역시 다운양이 자퇴한 것이 후회되도록 학교 안 아이들에게 '배움 있는 공부'를 하고 '정답 없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겠습니다. 적어도 더는 비루한 교사는 되지 않겠습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다운양이 제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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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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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생활 17년, 자퇴한 다운양이 제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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