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월미군 용역회사에서 위생반장으로 근무한 강영남씨의 증언.
김당
베세라의 기억과 당시 주월미군 용역업체인 PA&E에서 위생반장으로 일한 강영남(75)씨의 기억을 비교하면, 증기탕 시설 설비와 운영 시기, 서비스 요금 등이 일치한다. 베트남의 제3군구 제2야전군 작전지역(사이공 지역)에 주둔한 보병9사단과 제25사단의 부대 위생관리(식수 공급 및 쓰레기 처리)를 담당했던 강씨는 "한국군과 달리 미군은 미군만 입장하는 '스팀 배스'를 사단 영내에 운영했다"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담당했던 미군 보병9사단 사령부는 (사이공 남쪽의) 붕타우 가는 국도에 롱탄이란 지역에 있었다. 미군은 영내에 스팀 배스를 운영했는데 퀀셋 막사로 돼 있었다. 사우나 입장료는 5달러였다. 9사단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베트남 여자들 50, 60명 정도로 기억한다. 요즘 말로 유사성행위가 이뤄졌지만 섹스도 했다. 그러니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이용한) 터키탕 요금이 38달러였다는 <주간문춘> 보도는 말이 안된다."미군은 '터키탕' 운영했는데, 한국군은 안 했을까?그렇다면 미군은 1960년대 당시 한국과 베트남에서 터키탕(마사지 룸이 딸린 증기탕)을 부대 안에서 운영했는데, 한국군은 정말 그런 '유사성행위 시설'을 운영하지 않았을까? 필자가 취재한 바로는 한국군 부대 내에서 터키탕 시설을 운영한 사례는 없었다. 당시 참전 군인들도 주로 사이공 시내의 사창을 이용해 성욕을 해소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왜 일본 언론들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전용 위안시설'을 운영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물론 이런 보도와 주장의 밑바탕에는 제2차대전 당시 구(舊)일본군 종군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한 책임을 희석하려는 '물타기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의심을 살 만한 여지는 있다.
예를 들어, 한국군이 주고객이었던 사이공 시내의 'PHAN-Tan-Gain'이란 터키탕은 베트남 여성이 운영했지만, 한국군 장교들과 관계가 돈독한 한국인 남자가 뒤를 봐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한국군 전용 증기탕'으로 잘못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의심의 소지는 해방 전에 일본군-관동군에 복무하면서 위안부 제도를 경험한 일본군-관동군 출신 군 간부들이 6.25 한국전쟁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중대 단위의 '위안부대'(위안소)를 실제로 운영했고, 이후 베트남전에서도 위안시설 운영을 계획했던 것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2002년 2월에 ▲
한국군도 위안부 운용했다 ▲
"베트남전 때도 '위안대' 운용 계획" 등으로 기사화한 바 있다.
불과 5년 전까지 일본군이나 관동군에 복무했던 한국군의 핵심 간부들은 1950년 6.25가 발발하고 전쟁이 장기화하자, 전투력 손실 방지와 사기 앙양을 구실로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했다. 또 이들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에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게 되자 같은 이유로 위안소 운영을 기획했던 것이다. 물론 한국군 위안부는 그 규모나 강제성에서 일본군위안부(성노예)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발상은 유사한 것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한 장군들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