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태 고지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 고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스승으로부터 독립한 젊은 다빈치가 그린 '수태 고지'는 그의 다양한 실험 정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용은
다빈치의 '수태 고지'는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작가들의 '수태 고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먼저 실내나 현관이 배경이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가로로 긴 화폭에 탁 트인 실외가 배경이라는 점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신의 공간인 자연을 배경으로 가볍게 앉아 있는 천사와 인간의 공간인 건물 입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성모 마리아. 가브리엘 천사 뒤로는 대기 원근법이 정밀하게 사용된 자연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런가 하면 성모의 뒤로는 벽돌 건물이 투시 원근법으로 표현되어 있죠.
솜씨 좋은 정원사가 다듬어 놓은 듯, 기하학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된 각기 다른 종류의 나무들은 오히려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자세히 보면 멀리 보이는 작은 배경들도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런 묘사를 위해 다빈치는 자주 아르노 강변의 풍경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비오는 날이든 맑은 날이든 따지지 않고 며칠이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관찰했던 자연을 그린 것이지요. 화가라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 당연함의 시작이 바로 르네상스이고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입니다.
특히 사물의 윤곽을 명확히 드러내던 당시의 관습과 달리, 같은 톤으로 그려진 그림 중앙의 물과 산과 하늘은 근대의 수채화, 심지어 동양의 산수화와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다빈치는 이런 아름다운 배경 위에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인물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옷자락과 천사의 날개, 평온하면서도 종교적 신성을 잃지 않은 얼굴, 그리고 우아한 손동작까지. 그림의 모든 요소들 하나하나가 기존의 '수태 고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다빈치가 이처럼 근대성을 꽃 피우기 시작한 때가 20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이 모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 눈앞에 다빈치의 붓 터치가,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다빈치의 작품입니다('세례 받는 그리스도'는 어쨌든 베록키오의 작품이니까요). 내 사춘기 시절의 영웅, 레오나르도 다빈치. 숨을 쉴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내 곁에 섰다가 지나갔지만 나는 오로지 다빈치만 느낄 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오래 다빈치의 '수태 고지' 앞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피치 미술관'은, 아니 피렌체는, 아니 이탈리아는 정말 잔인한 곳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만, 또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그 피 같은 시간을 줄이고 또 줄여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다음 작품 앞에 서면 또 다시 그 앞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빈치에게서 받은 감동을 안고 약간은 멍한 상태로 페루지노, 피사노의 명작들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이래 가지고 안 되겠다 싶어 안드레아 만테냐의 세 폭짜리 제단화 앞에서 겨우 마음을 다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