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안에 나와 아내가... 기발한 설치작품

[유럽 패키지 여행 ② 베네룩스 3국] 벨기에 브뤼헤 ①

등록 2015.08.09 10:52수정 2015.08.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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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주차장을 찾다 브뤼헤 역까지 가다

 운하 안으로 설치된 크루이스문
운하 안으로 설치된 크루이스문이상기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나오니 주차장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체코 버스에 우크라이나 운전기사 빅토르 리(Viktor Lee)가 나왔다. 서유럽의 버스와 기사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비용절약 차원에서 중동부 유럽의 차와 기사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고 말았다. 기사가 영어를 잘 못하고 서유럽 지리에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이드와 기사가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 일행 32명을 태운 버스는 오전 6시경 스키폴 공항을 출발 벨기에의 브뤼헤로 향한다. 브뤼헤까지는 253㎞로 두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브뤼헤시에 들어와 버스가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구시가지는 차량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시 외곽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맨다. 이곳에 와 봤다는 가이드도 안내를 제대로 못한다. 요즘 내비게이션 때문에 기사들이 이렇다.

 브뤼헤역
브뤼헤역이상기

나중에 브뤼헤 지도를 구해 살펴보니 크루이스문(Kruispoort)에서 남쪽으으로 가야하는데 북쪽으로 간 것이다. 운하를 따라 난 길을 15분 가령 헤맨 끝에 겨우 브뤼헤 역을 찾아간다. 급한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브뤼헤 역은 브뤼헤 구시가 남쪽 운하 밖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브뤼헤 트리엔날레'가 5월 20일부터 10월 18일까지 5개월 동안 열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세도시 브뤼헤에 21세기 대도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민들로 하여금 설치작품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차역 앞에는 콘테이너 형태의 조형물에 '브뤼헤의 새로운 시민 되기'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이 조형물은 다니엘 데밸레(Daniël Dewaele)의 작품으로, 잠재적인 브뤼헤 거주자들로 하여금 희망과 꿈을 꾸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술작품이 기차역에서 담문(Dampoort)까지 운하를 따라 14점이나 설치되어 있다.

성모교회로 가는 길

 4번 선착장이 있는 운하
4번 선착장이 있는 운하이상기

여기서 다시 운하 남쪽 섬에 있는 버스 주차장을 찾는데 기사와 가이드는 또 한 번 헤맨다. 우여곡절 끝에 카날아일란트(Kanaaleiland)에 주차를 하고, 우리는 성모교회(Onze-Lieve-Vrouwekerk)로 걸어간다. 그곳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을 보기 위해서다. 운하에 설치된 빨간 인도교를 건너가니 수변공원이 나타나고 그 끝에 베기인호프(Begijnhof)가 있다. 이곳부터 구시가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운하 옆 둔치에는 고니들이 놀고 있고, 운하를 따라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시내 쪽으로 들어가면 말에 물을 먹이는 우물이 나타난다. 우물을 지나 마리아 거리로 들어서면 다리를 통해 다시 운하를 건널 수 있다. 이 다리 아래 유람선을 탈 수 있는 4번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중세의 건물이 운하에 비치기 때문이다.

 성모교회 마리아 제단
성모교회 마리아 제단이상기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이상기
이곳 마리아 거리에 성모교회가 있다. 교회 탑의 높이가 무려 122.3m로 브뤼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교회 안은 내부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곳곳에 옛 그림이 있는 벽체를 떼내 보관하고 있고, 대리석으로 나무로 만든 성상들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진짜 보물은 남쪽 주랑 동쪽 제단에 있다. 그곳에 1504년경에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으로 만든 성모자상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이 성모자상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Siena) 대성당에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브뤼헤의 상인인 얀과 알렉산더 모우스크론(Mouscron) 형제가 구입해 1514년 고향에 기증을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이곳 성모교회에 봉헌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귀중한 문화유산이 두 번 약탈되었다 돌아왔다고 한다. 한 번은 1794년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서고, 또 한 번은 1944년 나치 독일군에 의해서다. 성모자상을 보려면 2€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역사관에서 안타까운 시간을 낭비하다

 성모교회
성모교회이상기

성모교회를 나온 우리는 시몬 스테빈(Simon Stevin) 광장을 지나 성 외곽길을 따라 시장광장으로 향한다. 중간에 신부이자 시인인 구이도 게젤레(Guido Gezelle: 1830-1899)의 동상을 만난다. 그는 이 지방 언어인 플랑드르어로 글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벨기에 인상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우울하다. 지금 벨기에 국민들이 주로 프랑스어를 쓰기 때문일까?

이곳에서 시장 광장까지는 다락방이 있는 3-4층집들을 무수히 볼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은 붉은 벽돌에 붉은 지붕이고, 좀 더 최근의 건물은 흰색 벽에 검은 지붕이다. 중간에 노인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라고 한다. 시장 광장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붐빈다. 그것은 이곳이 브뤼헤 구시가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브라이델과 코닝크 동상
브라이델과 코닝크 동상이상기

광장 가운데 얀 브라이델(Jan Breydel)과 피에테 드 코닝크(Pieter de Coninck)의 동상이 있다. 이들은 1300년 전후 프랑드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자유의 투사들이었다. 광장 남쪽에는 종탑(Belfort)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83m 높이의 전망대로 366개의 계단을 올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이 동쪽으로 1m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광장 동쪽에는 지방법원 건물이 있고, 그 옆에 브뤼헤 역사관(Historium)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브뤼헤의 역사를 알고 싶어서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입장료가 비쌀뿐더러 내용도 너무 전문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관은 브뤼헤의 황금시대인 1400년대를 보여주기 위헤 7개의 테마관으로 만들어졌다. 관광객이 이들 각각의 테마관으로 이동하면 무대장치, 영상, 특수효과 등을 통해 우리 모두를 중세로 돌아가게 만든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시장광장 북쪽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 본 시장광장 북쪽 모습이상기

이야기는 이곳 출신의 유명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1390-1441)의 작업장에서 시작된다. 반 아이크는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터번을 쓴 남자'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35년 얀 반 아이크의 공방에서 일하던 도제 야콥(Jacob)은 시장에서 안나(Anna)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방해자가 나타나 그들은 헤어진다. 그녀는 결국 부유한 상인의 아내가 되었고, 야콥은 공방에서 만든 작품을 상인에게 전달하다 안나가 그의 아내가 된 것을 안다. 안나는 남의 아내가 되었지만 야콥에게 사랑의 징표로 앵무새를 전해준다.

테마관을 나오면 2층의 전시관과 전망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역사관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 전시관을 대충 보고 전망대로 나간다. 이곳에서는 남쪽 종탑과 서쪽과 북쪽 길드하우스 전망이 특히 좋다. 그런데 아내가 화가 좀 났다. 재미도 없는 역사관을 보느라고 종탑에도 못 올라가고, 시장광장도 제대로 볼 수 없겠다고, 우리는 역사관을 나와 서둘러 시장광장을 한 바퀴 돈다.  

시장 광장 돌아보기

 시장광장 북쪽 길드하우스
시장광장 북쪽 길드하우스이상기

먼저 북쪽 길드하우스로 가 외관을 살펴본다. 대개 4층짜리 벽돌 건물로 광장 쪽으로 난 박공벽이 아름답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맞배지붕인데, 지붕의 경사면 벽에 창문을 만들거나 장식을 해 아름다움을 더했다. 건물마다 색깔이 달라 다양성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그 중 한 건물 레스토랑에 들어가 와플과 커피를 시켜 맛을 본다.

서쪽 길드하우스는 북쪽에 비해 덜 화려하지만 작은 도시의 길드하우스치고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길드하우스 앞에는 브뤼헤 트리엔날레 설치작품으로 비베케 옌센(Vibeke Jensen)의 '다이아몬드로 세상보기(Diamondscope)'가 세워져 있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8각형 조각을 연결해 다이아몬드 구성체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앞에 있는 종탑, 옆에 있는 동상, 북쪽과 서쪽에 있는 길드하우스들이 비쳐 새로운 형상을 창조해낸다.

 다이아몬드로 세상보기
다이아몬드로 세상보기이상기

그리고 작품 옆을 지나가는 온갖 형상들이 거울에 비쳐 실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예술작품은 서 있지만 그곳에 비치는 상은 실시간 변화하고 움직인다. 우리 부부도 그곳을 쳐다보며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작품 밖에 있는 나와 아내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놀라운 기법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예술이 주는 새로움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버스로 도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거여?

 무위유위
무위유위이상기

우리는 종탑에 올라가보지 못하고 시청이 있는 성곽(Burg)광장을 가보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브뤼헤 도심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가면서 보지 못한 건물과 도로 그리고 운하를 보고 또 본다. 광장을 떠나며 독특한 모양의 시티투어 버스도 만난다. 15인승 정도 되는 아담한 승합차다. 작은 도시라 큰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실용적인 모습이다.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데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중국 예술가 송동의 설치작품 '무위유위(無爲有爲)'를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무언가 한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빌딩에서 버려진 유리창을 재활용해 만든 것으로, 구조물의 상단에 무위라는 단어를 썼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대도시의 끝없는 성장과 자연과 (문화)유산이 맞닥뜨리는 긴장관계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번 트리엔날레에는 일본 예술가 다다시 가와마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구시가지에 멈춰 선 버스
구시가지에 멈춰 선 버스이상기

버스로 돌아온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브뤼셀로 향한다. 아, 그런데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브뤼헤 도심으로 들어선 것이다. 차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돌고 돌아 어느새 시장광장을 지나고 있다. 조금 전에 걸어다녔던 그 광장이다. 이곳에는 시티투어 버스만 유일하게 운행이 허용된 지역인데, 이걸 어쩌나? 운전기사는 서둘러 출구를 찾는다. 사람들만 다니는 길을 대형 관광버스가 들어오다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버스는 종탑 옆으로 나 있는 볼레 거리를 지나다 고문박물관(Torture Museum) 옆에서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다. 버스기사가 내려 결국 65€짜리 딱지를 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도심을 벗어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 바람에 브뤼헤 시내를 두 번 보기는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운전기사고 가이드고 도시 지도(City Plan)를 보고 공부 좀 제대로 해야겠다. 내비와 스마트폰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브뤼헤 #브뤼헤 트리엔날레 #성모교회와 성모자상 #브뤼헤 역사관 #시장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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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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