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마당' 행사에 앞서 자원봉사로 참여한 젊은이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깨끗이 닦고 있다.
임재근
먼저 김한수 할아버지는 강제 징용 당했던 과정과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했던 강제 노동을 증언했다. 김한수 할아버지는 전시 무기인 항공 모함 제작 과정에 동원됐다. 오늘날 일본에서 미쓰비시가 이처럼 크기 까지는 김한수 할아버지처럼 대가 없이 강제로 끌려간 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가 바탕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의 음식은 상상할 수 없이 비인간적이었다. 증언 대회의 사회를 맡은 오마이뉴스 장재완 기자가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묻자, 김한수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개들한테도 그런 음식을 주지 않습니다.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 그것도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그것을 닦아서 찝니다. 쪄서 도시락통에 담는데, 그게 푸스럭 푸스럭 해서 기울이면 주르륵 모래와 같이 쏟아집니다."오마이뉴스 장재완 기자는 그간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인 김한수 할아버지와 최장섭 할아버지의 증언을 기사를 통해 수차례 보도했고 강제 징용 피해 현장을 피해자들과 함께 방문해 보도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우리는 인간 이하의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김한수 할아버지의 증언을 듣던 시민들은 일본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탄식을 터트렸다. 이어 김한수 할아버지는 "그들(일본)이 한국인을 끌고 온 것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일 뿐"이라며, "한국인이 죽으면 내버리고, 죽지 않게만 하고 일을 시켜 먹었다"고 말했다. 또 "지금도 복수의 칼날을 품고 산다"고 강조했다.
조선소 공장에서 일하던 중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 폭탄으로 원폭 피해를 당한 일을 김한수 할아버지가 말할 때는 증언을 듣던 시민들이 한층 더 숙연해졌다. 일본이 중국인이나 미국 포로들을 강제로 일을 시킨 것은 잘못이지만,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 사람들의 경우는 경우가 다르다'며 사과를 거부한 사실에 대해 생각을 묻자 강제 징용 피해 당사자인 김한수 할아버지는 "가슴이 메어져 차마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왜놈의 악독한 손에 끌려가서 개나 돼지도 먹지 않는 음식을 먹어가며 강요 당했던 피폭자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싶은 말씀은 내 나라 방어는 내 힘으로라는 기본 정신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준 열사와 같은 그런 분과 같이 국권을 훼손당했을 때에는 배를 갈라 피를 뿜을 수 있는 그런 용맹스럽고, 자랑스러운 젊은이가 되어주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