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가 성희롱 피해를 문제제기했다는 것을 이유로 보복성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결국 어떠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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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사건이 형식적으로 처리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조치가 미미한 수준에서 끝나는 것 외에도 조사과정과 이후 피해자를 괴롭히거나 성희롱의 원인을 피해자의 행동 탓으로 돌리는 등 비가시적인 불이익 양태들은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특히나 동료 직원들로부터 받는 조직적인 따돌림이나 비난은 그 자체로도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자 또 다른 성희롱 피해가 되기도 하며, 더 이상 근로관계를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결국 "성희롱을 말하려면 일을 그만 두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만들고, 때문에 상담의 시점이 이미 퇴사 이후인 경우도 많다.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과 같이 성희롱 조사 진행 과정 중 "원래 내연의 사이였는데 이제 와서 여자가 뒤통수치는 것이다", "성희롱 문제제기로 한몫 챙기려는 꽃뱀이다"라는 악의적인 소문이 인사팀 혹은 피해자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로부터 유포되어 피해자의 직장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또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고, 제대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장이 "원래 많이 밝히는 여자다"라는 내용증명을 가해자가 있는 거래처에 내용증명으로 발송하는 사례(2013년/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도 있었다. 아울러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조직에 문제제기를 했을 때 사측에서 피해자를 "업무 수행이 원활하지 않고", "동료들과의 관계 불화로 조직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으로 규정지어 조직적으로 고립시키는 경우도 있다.
사측의 이 같은 행위는 피해자를 위축되게 만들어 전과 같은 직장생활을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때문에 이런 결과를 이미 예측하고 있거나 경험해보았던 피해자는 문제제기를 단념하고 말거나 참고 참다가, 인내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결국 스스로 퇴사를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회사의 목적은 "학습효과"직장 내 성희롱의 원인 중 하나인 직장 내 권력과 위계의 문제는 성희롱 가해자의 대부분이 사업주나 직장상사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가해자는 조직이 더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해자에 대한 옹호, 용서, 보호 분위기는 '직장 내 성희롱은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는 그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피해자 중심의 사건 해결이 아니라 내용과 과정, 결과야 어떻든 빠른 문제 해결이 목표가 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성희롱 사건 처리 절차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서, 잘 처리하고 싶은데 아는 게 없어서 결과적으로 그러한 피해를 양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소수다. 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매우 쉽게 가해자편에 서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처리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명확하게 갖지 못하는 한, 결과적으로 모두 그러하다. 정황상 성희롱이 명백함에도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맥이 같다.
"문제제기 해봐야 별 수 없다", "문제제기 해봐야 너만 손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 피해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조직 구성원들은 이른바 보복행위라는 위협을 학습하고, 결국에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문제제기를 포기하고, 권리 행사는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하며, 성희롱을 목격하고도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효과는 비단 성희롱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노동자로서의 자기 권리에 대하여 소극적이게 되며, 문제는 느끼지만 함구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로서 어떠한 노동기본권조차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발적으로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된 구성원들은 회사의 지시에 의해서든 자발적인 선택에서이든 보복행위(불이익 조치)의 공범자가 되고, 피해자들의 저항과 문제제기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내가 살아남으니까.
앞서 언급한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불이익 조치보다 명징한 해고조차 벌금 50만 원으로 끝난 경우가 있다. 결국 법의 실효성의 문제는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제아무리 손을 뻗어봐야 잘 닿지 않는 법보다 회사 내부의 예방과 사건처리 절차 시스템을 얼마나 잘 구축하고 작동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서 회사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일일이 그 책임을 묻고, 법적 다툼을 벌이게 할 것이 아니라, 성희롱이 발생한 사업장 자체에 고용노동부가 직접 패널티를 가하고, 조직이 해당 문제를 책임있게 처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해야 한다.
예컨대, 성희롱 사건 사업장에 대한 특별감독 또는 성희롱예방교육의 강화 및 재발방지 인권교육의 실시, 재발방지보고서의 제출, 사건 처리 이후 3~5년간 피해자보호현황에 대한 리포트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다. 피해자 또는 피해 주장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 조치가 존재하는 한,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주고, 이와 같은 사건 처리 기관의 전문성을 담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 조치의 현실을 알고, 그 심각성을 공감하는 것, 나아가 그 편에 설 수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출발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