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스바일러 마을 한복판에서 1581년부터 샘 솟고 있는 마을의 공공재 샘물 -
정기석
독일 농정의 목표는 '사람 사는 농촌'
이렇게 독일의 농정이 궁극의 목표로 삼는 지상과제는 그저 '사람 사는 농촌'이다. '돈 버는, 또는 돈 되는 농산업'이 아니다. 농민도 사람 꼴을 하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생활농촌을 지향한다. 그 소박하지만 소중한 '농(農)'의 철학과 가치를 공평하고 공정하게 실천하는 데 독일 농정당국은 매진하고 있다.
물론 첨단기술농업이니 농식품가공이니 수출농업이니 '돈도 되는' 농업전략과 정책이 없는 게 아니다. 그건 자본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일부 기업농이 할 일이다. 대다수 중소농이 함부로 덤벼들 영역이 아니다.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caft)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독일 농촌에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굳이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정부의 공무원들은 애를 쓰고 있다.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전통과 경관을 지키려고 들판의,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다. 농업소득 보다 많은 소득보전 직불금도 다 그런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정책의 성과물이다.
그런 독일 농정의 현장에서 나는 계속 감동하고 감탄했다. 농민의 삶을 돌보고 지키려 애 쓰는 이 국가의 도덕성이, 이 정부의 책임감이, 이 국민들이 품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와 양식'이 놀라웠다. 결국 신뢰, 협동, 연대 같은 철두철미한 사회적 자본의 힘이 부럽고 샘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의심과 의혹이 크게 들었다. 지난날 독일 등 유럽의 선진 농정을 배우고 돌아와 오늘날 대한민국 농정당국의 요직을 꿰차고 있는 수많은 학자, 공무원, 전문가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대체 무엇을 했나.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도대체 독일 같은 농정 선진국의 농업, 농촌 현장에서 그들은 뭘 보고 느끼고 돌아온 건가.
설마 독일에 가서 농업을 자본에게 헌납하는 농업의 기업화개론과 공업화총론만 공부한 것인가. 삶의 터전인 농촌 마을을 한낱 유원지 같은 구경거리로 만드는 관광지화 경영론, 공원화 개발론만 실습하고 온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우리 농업이, 우리 농촌이, 우리 농민의 삶이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