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단상

등록 2015.09.30 14:28수정 2015.09.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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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의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전반기는 이민족의 강압으로 얼룩진 식민지 시대였고, 후반기는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정치 군인들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과거 수많은 외침을 받아 왔지만 이렇게 처절하게 나라가 송두리째 없어지고 또 동족 간의 무자비한 살육이 지속되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그 초토화된 국토는 절망과 비탄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다른 민족 같았으면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라 자체가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6.25 전쟁을 지휘한 미국의 어느 장군은 한반도가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려면 100년은 소요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초토의 잿더미 위에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기적을 이룩해 냈다. 휴전 직후 후진국 중에서도 꼴찌를 다투던 경제 규모는 현재 당당히 세계 10위권을 넘나들고 있고, 1인당 3만 불이 넘는 국민소득으로도 상위권에 손꼽히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나라, 닮고 배우려고 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이런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우리 민족의 교육열을 들고 있다.

물론 교육만이 그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창의성, 또 신바람과 도전 정신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교육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모든 걸 희생한 부모 세대의 헌신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기적이 이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양성된 유능하고 잘 훈련된 인력이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한때 경제 위기를 겪던 영국에서도 그 탈출구로 우리나라 교육을 벤치마킹한 적이 있고, 현재 미국 대통령도 우리 교육의 장점을 수시로 거론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교육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교육의 초점은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데 맞추어져 있고, 학생들은 오로지 내신 성적과 수능 점수 높이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유치원 과정부터 대학 입시 대비를 위한 전략이 작용하고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 또한 좋은 대학 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인식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격리시키는 '기러기 아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이한 제도이고, 좋은 학구를 골라 불편을 무릅쓰고 이사를 마다하지 않는 과열 현상까지 당연시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사교육 시장의 확산으로 정규 학교 교육은 오래 전에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학원 선생을 더 신뢰하고, 학교생활은 사회생활을 위한 인맥 형성에 불과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모든 교육의 기본이라 할 인성교육을 위해 국회에서 법까지 만들어 강제하려고 했을까.

대학 또한 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등학생 수의 절대 부족으로 소위 하위권 대학들은 구조 조정의 바람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잘 안 되니 진학률은 점점 떨어져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의 본질이자 사명인 진리 탐구나 학문 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고, 실용 위주의 과목 개설에다 취업 준비 교육이 대학을 점령하고 있다.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변질되면서 도서관에는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과 대기업 입사 시험 준비하는 학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대학이 죽었다는 선언이 결코 헛소리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교육부는 어떤가. 오래 전에 교육부가 없어져야 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독설이 나왔고, 심지어 어떤 대통령 후보는 교육부 폐지를 공약을 내걸기도 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을 위한 기구가 생겼고, 기세 좋게 출발한 교육개혁은 얼마 못가  강고한 기득권 세력의 벽에 부딪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생생하게 목격해 왔다. 거기서 일하는 분들이야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밖에서 보기에 교육부는 '쓸데없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봉하는 분들만 모여 있는지, 모든 정책이 경쟁과 평가 일변도로 이루어져 평가만능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대학 쪽만 놓고 보았을 때, 예산 지원과 연계된 수많은 평가가 대학 정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일정한 평가와 경쟁은 어느 부문에서나 조직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점을 부인할 수 없으나 모든 걸 평가로 강제화하여 그 결과로 결정하는 건 하책 중에서도 하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하기는 편할지 모르나 그런 일은 조직을 경화시켜 고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평가의 칼자루를 쥐고 피평가자를 쥐락펴락하며 권력으로 농단하려 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보아 대학을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다.


교육부는 권력 기관이 아니다. 그런데도 거기 근무하는 분들은 대단한 권력자처럼 군림하려 하고 있다. 자기 호주머니 돈을 내주는 것도 아니면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돈을 마치 선심 쓰듯 나눠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권력화하여 대학들을 조종하려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바꾼 제도에 의해 정당한 방법으로 선출한 국립대학 총장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방치하여 장기간 공백 상태로 두는 것 아닌가.

또한 수십 년 동안 국립대학 교직원들이 임금 보전 방식으로 받아오던 급여 성격의 보수를 해괴한 성격의 계획서와 결과 평가 제도를 신설하여 마치 돈 몇 푼에 교수들이 움직인다는 식으로 자존심과 체면에 상처를 주고 있다. 교육부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쓸 일이 아니라 대국적인 장기 비전 수립과 조건이 최소화된 지원에 몰두해야 마땅하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우리나라 교육을 어떻게 하면 정상화할 수 있을까. 또 무한 경쟁의 미래에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가 현재보다 나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이에 관해 몇 가지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말해 보고자 한다.

첫째, 모든 교육 개혁에 앞서 가장 먼저 교육부를 개혁해야 한다. 현재의 교육부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교육의 모든 걸 총괄한다는 과욕에서 벗어나 현재 거기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을 지방 교육청과 일선 대학에 넘겨주어야 한다. 그게 교육의 지방자치에도 맞고 대학의 자율화에도 합당한 일이다. 그리고 교육부에서는 국가 수준의 교육 정책 수립과 지원 정책을 만드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 모든 교육 정책의 집행을 교육부가 독점하려는 데서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과중한 업무의 무리가 오고,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런 방향의 교육부 개혁은 상호간에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속히 포기하는 일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란 다 알고 있다시피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정권 때 경제 위기 타개책으로 채택된 특별한 경제 정책이다. 작은 정부, 규제 철폐, 민영화, 경쟁과 효율 등을 내세우는 이 정책 가운데서 경쟁과 효율만 쏙 빼내 교육에 도입한 게 바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다. 한때 선진국에서 이 정책이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그 비교육적 폐해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이미 포기를 선언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뒤늦게 이 정책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아마도 위에 있는 분들 입장에서는 '아랫것들' 부려먹고 통제하는 데 이 정책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인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끼리, 학교끼리, 교사들끼리 경쟁이 부추겨진다. 대학에서도 단과대학별, 학과별, 교수별 경쟁이 일상화되어 있다. 살벌하고 비인간적인 경쟁 풍토에서 아무리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을 부르짖어 봤자 헛소리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을 한시바삐 철폐해야 정상화의 첫발이 떼어질 수 있다.

셋째, 인류의 미래와 한국의 장래를 고려하는 교육 정책의 개발과 적용이다. 21세기가 되기 한참 전에 유네스코에서는 21세기 교육이 지향해야 할 네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지속가능한 발전'이 그것이다. 사람을 가장 중시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환경과 자원의 활용은 우리 시대의 의무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교육기본법 2조에 명기된 '홍익인간'이라는 훌륭한 교육 이념이 있다. 이에 대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제 작가 게오르규는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철학이자 이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훌륭한 교육 철학을 세계화하는 한편, 법조문에서만 살아 있는 이 이념을 현대화하여 교육 현장에 적용 가능하게 만드는 일을 시급히 수행해야 한다.

넷째, 공고한 학벌 체제의 해체가 필요하다. 두말할 것 없이 현재 우리 교육의 파행 원인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공고한 학벌 체제라 할 수 있다. 세칭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곳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고, 그들에 의해 나라가 좌우되니 그 그룹에 편입하려는 경쟁은 필연적이다. 특히 부와 권력의 세습화가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에서 서민들의 땀과 노력의 대가가 제대로 대응되기는 불가능하다. 견고하게 고착된 대학 서열화의 틀을 깨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책이나 대안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밖에도 우리 교육이 당면한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리고 이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성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환생해 온다 해도 우리 교육을 바로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를 방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뿐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초토의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재탄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의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교육을 풀어낼 요체는 무엇일까. 그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현존 관력자들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왔다. 교육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고시된 2015개정 교육과정 또한 이런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나 충분한 논의 과정 없는 졸속적 결정이 이를 대변한다.

교육을 일반 행정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여 비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또 교육을 권력 유지와 강화의 도구로 여기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최소한 이 두 가지만 실천된다 해도 우리 교육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는  일도 아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 우리가 선진국의 교육을 부러워하며 자녀 세대들에게 미한한 마음을 어느 정도는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9월 14일자 공주대신문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교육개혁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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