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강사 이경미씨.
매거진군산 진정석
"대학만 졸업하면, 200만 원은 쉽게 벌 줄 알았어요. 취직해서 엄마한테 뭐든지 다 해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2012년 2월, 지방에 있는 한 사립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경미씨는 군산 집으로 왔다.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입시학원에서 수업을 잘 하면, 학생들이 늘고, 그러면 인기 강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도 했다. 경미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어학원에 취직했다.
어릴 때 경미씨 꿈은 한의사.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이 좋다고 해서 일찌감치 정해놓은 꿈이었다. 무엇이든지 지면 속상한 아이였다. 마흔에 외동딸을 낳아 애지중지 키우는 부모님이 실망할까봐 무엇이든지 잘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학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도,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손꼽을 만큼 공부를 잘 했다.
"우리 학교에서 전교 1등 해도 한의대 가기 힘들대."군산여고 1학년 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들었다. 한의사라는 꿈을 쉽게 버릴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이과와 문과로 나뉘는 2학년 때, 그녀는 당연히 이과를 택했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능력이 못 미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선생님한테 문과로 바꿔서 영어교육학과 가겠다고 했어요. 안 된대요. 그래서 싫어하는 수학Ⅱ랑 물리를 계속 공부했어요. 내신이 중요하니까요. 저희 학교에는 이과에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몰려 있었어요. 등급제라서 4%만 1등급이에요. 하나만 틀려도 4등급이에요.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은 교차지원(이과에서 문과로 지원)도 안 되고. (한숨) 그래도 열심히 했죠." 어학원 영어 강사하다 만난 요가...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그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임용고시 봐서 영어교사 되는 게 목표였다. 성적장학금도 받아야 하니까 학과 공부도 신경 썼다. 복수전공으로 '외식산업조리학과'를 하고도 싶었지만 공부에 방해될까봐 포기했다. 선배들이랑 영작 스터디 모임도 했다. 어학연수 갔다 온 선배들이 경미씨가 쓴 에세이를 보고 "현지에서는 (이렇게) 안 써, 뉘앙스가 달라" 할 때마다 마음이 상했다.
"아빠, 서러워서 못 살겠어요. 저도 어학연수 가야겠어요. 보내주세요."경미씨가 말했다. 어머니와 둘이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는 등록금을 대줬다. 그러나 1년에 3천만 원쯤 드는 어학연수는 안 되겠다며 미안해했다. 경미씨는 좌절했지만 마음을 추슬러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힘들게 교사 돼서는 그만두는 선배도 보았다. 시험과 문법에 치중하는 학교 영어교육에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 4학년, 동기들은 임용고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경미씨는 그 대열에서 슬그머니 멀어졌다. 교사 되고 싶다는 마음은 희박해졌다. '학점은 마무리 잘 하자'고 생각해서 학과 공부는 하던 대로 했다. 졸업한 친구 몇이 짐을 꾸려 서울 청량리 고시원으로 갈 때, 경미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학원에 취직해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선생님이니까 공부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사탕 하나 더 사주고, 쉬는 시간 더 많이 주는 선생님을 좋아해요. 저는 학부모님들이랑 상담 전화하는 것보다는 숙제 꼼꼼이 검사해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숙제도 공부니까요.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전화 자주 하는 강사가 더 좋을 수 있죠. 그런 일로 치이니까 보람을 잘 못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