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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가옥의 모습
참여사회
- 서촌이 "뜬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예전에는 어땠는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고 있다는 건가? 신창희 "서촌 산 지는 15년 정도? 여기서 플라워카페를 한 건 8년쯤 됐다. 맘만 먹으면 산에 오를 수 있고 오순도순 동네의 정취가 살아 있는 곳이었다. 여기 살면서 '목욕동아리' 친구들도 생겼다. 15년 지기로 목욕탕에서 만나며 애 낳고 키우는 걸 본 사이들이다. 이해타산 필요 없이 동네 이웃으로 살아가는 느낌들을 갖는 게 서울에서도 가능한 곳이었다."
- 그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신창희, 장민수 "4~5년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2011년 무렵이다."
신창희 "단적으로 집주인이 월세 올려 달라는 얘기를 직접 안 하고 내용증명을 보내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8년 전 주택가 한복판에 꽃문화를 알리는 사랑방 개념의 카페를 열었을 때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3년 뒤쯤 옥인아파트 앞의 홍차집 티아트가 문을 열었고…."
장민수 "그 홍차집도 아파트 헐린 뒤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라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게 수성동계곡이 문을 연 탓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 신창희 "수성동계곡도 그렇고, 박노수 가옥을 60억에 매입한 것도 그렇고, 공공투자가 많이 이뤄졌고 홍보도 활발했다."
장민수 "또 하나, 박노수 가옥 매입 이전에 통인시장에 도시락카페가 생긴 것도 크게 기여했다. 사실 수성동계곡을 열 때는 기대도 많이 했다. 석축이 두 칸씩 더 높게 설계된 걸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낮추라고 요구해 지금 모습이 된 거다. 인공미가 덜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게 오히려 지역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2015년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이 한창인 이 거대도시에서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고 했던가. 지역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은 사회적으로 이뤄진다. 서촌에서 보듯 공공투자 및 지역주민과 상인들의 문화자본 투자로 지역이 뜨는데, 그 덕분에 오른 땅값과 임대료는 땅주인의 뱃속만 채운다. <상생도시>의 저자 조성찬 박사는 "개발이익 사유화는 사회의 것을 기업과 개인이 훔치는 '사회적인 도둑질'이며, 이를 방치하며 오히려 조장하는 국가는 과거 기업의 산파 혹은 보모 역할을 하던 친기업적 개발주의 국가의 면모를 채 벗어나지 못한 채 조세 형평성을 크게 왜곡하는 장본인"이라고 꼬집는다.
동네가 뜨고, 임대료가 치솟고, 동네를 띄운 가게들이 문 닫고, 프랜차이즈 가게들만 들어서고, 특색을 잃고 번다해진 동네에서 주민들의 삶은 오히려 번거로워지고…. 이런 악순환을 방치한 국가는 대체 왜 뒷짐만 지고 있는 걸까? 혹시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이 모두 땅주인이라서 그런 걸까,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 지역사회의 가치를 끌어올린 문화자본 역할을 하던 거점공간들이 임대료 압박 때문에 지역에서 쫓겨나는 통상적인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 말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어떤 일도 있었나?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내부의 젠트리피케이션도 있었다. 환경운동연합 앞에 종로기업이라는 술 도매 기업이 5~6층 건물을 짓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모여 반대운동을 한 게 모태였는데, 초창기 구성원들은 외국 박사 천지였다. 토박이 주민들로서는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외지인들 다 떠나고 순수 주민들만 남았다. 다들 나름의 이해관계와 욕심을 갖고 참여했던 거다. 지금은 상업시설 잠식에 따른 주거기능의 축소 문제만 다루고 있다. 그게 주민들로서는 제일 절실한 문제다. 예전의 박사님들은 자기 전공의 시각에서 서촌을 봤다면, 지금 우리 연구회의 주민들은 절실한 삶의 시각에서 마을을 보고 문제를 찾고 고치려 한다. "서촌을 아이들에게 고향으로 물려줄 수 있게 유지하자"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 아이들이 자랄 수 있는 마을로 지키고 싶은 거다."
- 이대로 놔두면 그런 마을이 망가지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다는 건데, 어떤 데서 그런 걸 느끼시나?장민수 "통인시장 도시락카페의 출범만 봐도 그렇다. 원래 그 시장은 배추 사서 김치 담그는 전통시장이었다. 그런데 도심 인근 주거지로 매력적인 입지 탓에 주민 구성이 바뀌면서 어느새 반찬을 사 가는 시장으로 바뀌었고, 그런 가게들을 이리저리 엮어 엽전을 이용하는 도시락카페까지 생겨난 거다.
전국 어디에나 전통시장은 있지만, 통인시장처럼 대박 난 곳은 없다. 거기엔 배후지로서의 주거지들이 든든한 배경이 된 거다. 이 주거지에서 문화도 나오고 마을의 힘도 나온 건데, 그걸 상업시설들의 등살에 밀려 쪼그라들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서촌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동네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려면 주거지의 매력,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로서의 매력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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