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수교육의 개척자들(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구맹아학교를 설립한 이영식 목사, 한국사회사업대학에 특수교육과를 설치한 이태영 전 대구대학교 총장, 한글점자로 훈맹정음을 반포한 박두성 선생,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맹인소녀를 지도한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
대구대학교
팬 없는 프로야구는 상상할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독자 없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책이 팔려야 출판사는 계속 책을 펴낼 수가 있고, 그래야 작가도 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신간이 서점에 나가면 이따금 독자의 편지나 전화가 오고, 일부 극성 팬은 학교로, 때로는 강원도 오지 산골 집으로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이런 독자는 글쓴이로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나는 독자에게 처음 받은 팬레터는 러브레터라도 되는 양,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잘 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 탓인지, 아니면 내 필력이 무뎌진 탓인지, 점차 그런 팬레터나 전화, 그리고 내 집을 찾아오는 독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여름, 한 통의 낯선 전화를 받고 보니 50여 년 전 중학교 동창의 전화였다.
"박도 선생, 구미중학교 출신 맞지? 나 김병하일세."
"병하! 참, 오랜만일세. 반갑네."
"자네가 쓴 장편소설 <약속>을 서점에서 사서 방금 다 읽고, 곧장 출판사로 연락하여 전화번호를 알았네."장편소설 <약속>은 나의 유년시절에 체험한 한국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고, 전쟁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격전지와 내 고향 구미 일대를 공간적 배경으로 펼쳐지는 북남남녀(北男南女)의 사랑과 분단 이야기다.
김병하 친구는 구미면 옆 고아면 평촌 출신으로, 바로 낙동강 강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한국전쟁을 아주 오지게(장애아가 된) 체험했다. 그래서 내가 쓴 장편소설 <약속>은 바로 자기 마을, 이웃 마을, 자기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라 아마도 책을 읽는 동안 더욱 그 시절이 어제 일처럼 새록새록 되새김질되었을 것이다.
그는 대구대학교에서 40여 년을 봉직한 다음, 3년 전에 정년퇴직했다는 그간의 소식을 전하면서 "더 늦기 전에 우리 한번 만나세"라는 말을 했다. 그 얼마 뒤인 7월 30일, 삼복염천 뙤약볕 날씨임에도 그는 부인과 손녀딸을 모시고 내가 사는 원주로 와서 치악산 기슭에서 1박한 뒤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