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서 중국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어한다는 양쯔강 삼협. 중국 돈 10위안짜리 뒷면에는 위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이승숙
"충칭(重慶)을 떠난 배는 느릿느릿 강을 따라 내려와 푸링에 도착했다. 1996년 8월도 하순에 다다른 어느 무덥고 화창한 날의 저녁이었다. 별들은 양쯔강 위에서 반짝였지만, 검은 물살에 반사되어 자취를 남기기엔 그 빛이 너무 약했다."이렇게 시작되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양쯔강 가의 작은 도시인 푸링을 그리고 있다. 1996년에 평화봉사단원으로 중국에 간 미국인 청년이 양쯔강 중류에 있는 작은 도시인 '푸링'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2년 간 산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살았던 경험을 <리버 타운>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 책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한 권의 책만 읽어도 중국을 다 알 수 있다"라고 평한 사람도 있을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푸링은 양쯔강 중류에 위치한, 인구 20만 명쯤의 작은 도시다. 중국에서 그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내륙 깊숙이 들어앉아 있으니 어쩌면 궁벽한 시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푸링에 가보고 싶었다. <리버 타운>을 통해 본 푸링이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 충칭에서 배를 타고 푸링으로 가보는 거야. 글쓴이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푸링사범대학에도 가보고 짐꾼인 '방방쥔'들이 어깨에 짐을 지고 오르내렸던 계단도 찾아봐야지. 학교 앞 국숫집의 여섯 살짜리 황카이는 이제 어른이 다 됐을 거야. 얼후를 연주하며 구걸을 하던 맹인과 딸은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책을 통해 본 푸링이 마치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충칭 구경은 뒷전이었고 내 관심은 오로지 푸링밖에 없었다. 충칭 인근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리버 타운>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장장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그 두꺼운 책에 밑줄을 쳐가면서 찬찬히 읽어나간 게 내 여행 준비의 전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푸링에 가지 못 했다. 내 여행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그곳을 못 가보다니, 어째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인가.
푸링은 충칭시에 속해 있는 도시이니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둘러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짤 때도 그리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자투리 시간으로도 다녀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 욕심으로는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푸링에 꼭 가봐야 된다고 내가 말할 때마다 남편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한 수 더 떠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가봐야 별 볼 것도 없을 텐데... 샨샤댐이 만들어지면서 푸링도 대부분 물에 잠겼을 거야. 책에서 봤던 그 풍경은 이제 그 곳에 없을 텐데..." 남편은 매번 이렇게 말끝을 흐리면서 내 열망에 회의를 표했다. 푸링에 가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그는 잘 알지를 못했다. 풍경을 보려고 그곳에 가려는 게 아닌데도, 그는 별 볼 것이 없을 거라며 시큰둥해 했다. 하기야 남편을 탓할 것도 없다. 책을 보지 않은 그로써는 당연한 반응이다.
남편에게 푸링은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잠깐 다녀오면 될 곳이었다. 그러나 내게 푸링은 그 어떤 곳보다 더 궁금하고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지 푸링에 가보고 싶다는 말밖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름다운 경치나 유명한 문화유적을 볼 거면 굳이 푸링에 갈 필요가 없다. 중국에는 그곳 아니어도 이름난 명승지와 역사 유적지가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도 내가 푸링을 꼭 가보고 싶어 했던 것은 <리버 타운>이라는 책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글쓴이가 맡았던 푸링의 냄새며, 도시의 소음도 나는 느껴보고 싶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도 만나보고 싶었고, 그 책을 통해 중국이란 나라를 호흡해보고 싶었다.
또 다른 욕심도 있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푸링을 그렇게 가보고 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놓고 말하려니 조금 부끄럽지만 그때는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푸링은 우리나라에 소개가 거의 되지 않은 작은 도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푸링에 대한 글이 거의 없었다.
누구나 다 여행 작가가 되고, 사진가가 되는 요즘에도 푸링은 미개척지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다녀온 곳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지만 남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이며, 더구나 책을 읽고 그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신나고 설레었다. 푸링은 그 어떤 관광지보다 나를 더 끌어당겼다. 그곳에만 있다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리버 타운>의 저자인 '피터 헤슬러'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나 역시 따라해 보고 싶었다. 우장강과 양쯔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그곳 푸링은 그렇게 내게 환상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뜻밖의 불행으로 바뀐 중국인 친구의 '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