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주도 강정 마을에 친구들과 <강정 사진관>을 열었다. 그곳에도 국민투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노순택
당신에게 띄웁니다.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밥벌이인 영화주간지에 원고랍시고 겨우 마감했더랬죠. 그날 밤, 고상함을 상실한 어느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술을 한 잔 걸치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눈치 없는 시인이었습니다. 자수했지요.
"형이 쓰라고 해서, 마지못해 쓰기는 했는데, 쓰라는 대로 쓰지는 못했다. 마음에 들어도 할 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할 수 없다. 배를 쨀 것이면 배를 내밀겠는데, 서로 떨어져 있으니 말로만 배를 내밀겠다. 자, 째시오."그는 미안하다더군요. 배를 째지는 않겠다더군요. "오늘 목요일인데, 나는 월요일부터 집을 나와 <을들의 국민투표>에 필요한 봉투를 부치고 상자를 만들고, '미안한 전화들'을 돌리느라 네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통화했습니다. 그는 통화하느라 일을 하지 못했고, 나는 통화하느라 술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말이 길어지자 나는 밖으로 나왔고, 그도 밖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밤하늘엔 별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시인은 제안했습니다. '내가 지금은 시를 쓸 겨를이 없으니, 네가 시를 써다오.' 내겐 그렇게 들렸죠. 막무가내더군요. 그리하여 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란, 지금을 부수는 말입니다. 지나간 미래를 반추하고, 오지 않은 과거를 예견하는 말입니다. 얼토당토않은 기준을 세웠다 부수는 일입니다.
윗글에서 소개한 '을들의 국민투표'는 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 어설픈 한 편의 시입니다. 웃기는 일이죠. 형용모순입니다. 가능한 일인가요? 그래서 뭐가 달라진답니까? 그래 봐야 저들은 꿈쩍도 않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고 "혁명하고 자빠졌네" 대신, "시 쓰고 자빠졌네"라고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시'란 얼마나 근사한 것입니까. 심지어 시인이 내게 시를 써달라 읍소하다니.
나는 술에 취해 시를 쓰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가나다라마바사아'라고 쓰여 있더군요. 깨고 보니, 시를 쓰라는 얘기가 아니라 편지를 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씁니다. 이것은 편지가 아니라, 편지가 되어버린 시입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라는 점에서, 일방적이 추궁이라는 면에서, 왜 당신인지 말하지만 왜 당신이어야만 하는지를 말하지는 않는다는 까닭에 억지라면 억지요, 시라면 시가 되겠죠. 짧다는 점에서도 이 편지는 시에 대한 편견에 부합합니다. 당신에게 띄웁니다.
'쉬운 해고'를 '노동 개혁'이라 말하는 이들류가헌 갤러리 박미경 관장님께이것은 '시'이므로 당신을 왜 좋아하는지 구구절절 말하지는 않으렵니다. 당신은 '사진'의 의미와 가치를 아꼈던가 봐요. 때문에 '사진하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사진쟁이들이 주목하는, 말로는 할 수 없어 사진으로 담아야 했던 대상과 장면 또한 눈여겨보았습니다. 내면의 속삭임을 귀담아들었고, 타인의 삶과 갈등에 관한 발언으로써의 사진 또한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