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미난 수집품. 두 아이는 날마다 이런 수집품을 새롭게 만들어 준다.
최종규
가만히 보면, 요즈음에는 '명품'이나 '진품' 이야기를 다루는 글이 퍽 많습니다. 그리고, 수수한 살림살이 이야기를 다루는 글은 몹시 드물 뿐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나온 공산품을 견주어서 따지는 글이 아주 많아요. 이른바 '상품평'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몸짓이나 모습을 놓고 '관전평'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스스로 짓는 삶이나 살림이 사라지면서, 수수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흐름입니다. 스스로 가꾸는 삶이나 살림이 자취를 감추면서, 수수한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숨결이 잊혀지는 흐름입니다.
그래도 인터넷과 사진기가 널리 퍼지기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 이야기가 부쩍 늘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흙을 일구었으니 굳이 이런 밭짓기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지도 않고 글로도 안 남겼다고 할 만한데, 오늘날에는 조그마한 텃밭에 씨앗을 심어서 손수 기르는 이야기를 사진으로도 찍고 글로도 남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책이나 어른책으로 두루 나옵니다.
잘못 보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빈손으로 사물과 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 직관이 고마운 까닭은 망설임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명성 따위에 의지할 필요가 사라진다. (152쪽)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이런 책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는 현실에. 멋진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 그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까지 주어졌다는 것에. 그리하여 그것을 원할 수 있고 신변 가까이에 둘 수 있을 만큼 좋은 환경에 있다는 것에. 더욱이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많은 친구들까지 있다는 것에. (223쪽)수수한 것을 그러모으는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손수 나무를 깎아서 지을 수 있는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신 한 켤레도 손수 빚었어요. 옷이야 아주 마땅히 손수 지었고, 밥도 언제나 손수 지었지요. 집도 언제나 손수 지으면서 가꾸었지요.
따로 전문가를 두지 않은 옛사람 삶입니다. 몇몇 전문가가 있는 삶이 아니라, 누구나 손수 삶을 짓는 삶이었기에, 참말 옛사람이 빚은 수수한 살림살이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 모두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민예품'이 될 만했지 싶어요.
어떤 솜씨를 뽐내려고 짓는 살림살이가 아니거든요. 뭔가 놀라운 재주를 부리려고 짓는 살림살이도 아니에요. '민예품'이란 수수한 사랑으로 수수한 손길을 뻗으면서 태어납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쓰는 살림살이는 수수한 꿈으로 수수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하나하나 빚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