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시험 보기 위해 학교로 향하는 덕이

[말없는 약속 20년 42] 어른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등록 2015.11.03 17:33수정 2015.12.1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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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계속 인내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야고보 1:12


덕이는 이런 저런 상황들을 감당하면서 대학생활 첫 학기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았다. 무엇이든 하기 시작하면 꾸준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지닌 덕분에 두차례의 시험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한 모양이었다. 시험 후 집에 와서는 덕이가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말을 한다.

덕= "이번 시험에서 아~ 책 어디쯤에 답이 있었는데 시험볼 때는 그것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못썼어"

그렇게 말하는 덕의 표정은 스스로 대견함과 흐믓함이 온 얼굴에 퍼져있었다.

고모 = "책 몇 페이지에 있었는데 시험 볼 때는 그것이 생각이 나지 않았어?"
덕 = "응, 조금만 더 했더라면 답을 쓸 수 있었을텐데."

고모 = "에구, 아쉽겠다."
덕= "응"(내가 맞장구를 쳐주니까 조금 전의 '응'보다 훨씬 높은 톤으로 '응'을 한다)


고모= "기억이 나서 잘 썼더라면 덕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기쁠텐데."

덕이의 그런 모습을 내가 보게 되다니...  이런 경우를 두고 '꿈만 같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고모 = "고모에겐 지금 덕이의 이런 모습이 진짜 멋있다. 대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스스로 잘하면서 시험 공부도 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나와 토론하듯 이야기 하는 지금 모습이 너무 고맙고 기뻐^^"
덕= (쑥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고 미소만 보낸다)

사실은 덕이가 집에 오기 이틀 전에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었다. '덕이가 재시험을 보아야 해서 방학했어도 학교를 왔다가야 한다고.' 예상은 했다. 재시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덕이는 스스로 시험지에 답을 썼다는 자체가 이렇듯 기쁜일인가 보다. 나 또한 마음껏 함께 기뻐해주었다.

재시험을 보기 위해 방학중에 학교를 갈 때 룸메이트와 인천터미널에서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다. 룸메이트 또한 재시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함께가기로 한 그날 약속시간이 되었어도 룸메이트가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나에게 덕이가 전화했다. 무슨일인가 싶어 룸메이트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하는 말 "00는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일찍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교수님이 차에 태워서 함께.

그 말을 들으며 내 머리에서는 '그럼 덕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것도 모르고 룸메이트를 기다리고 혼자 인천터미널에 있는데'라는 생각에 일단 전화를 끊고 덕에게 상황이야기를 하니까 덕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막막함에 몹시 당황해 했다. 룸메이트 기다린다고 하루 두 번(오전 1회, 오후 1회) 운행하는 인천터미널에서 학교 지역까지 가는 오전 버스는 이미 출발했기 때문이다. 오후 버스를 타고 갔다가는 오늘 돌아올 수가 없는 상황, 방학중이라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일단 덕에게 전화를 했다.

고모 = "덕아~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일단 오늘 학교에 가야하니까 전철타고 집 근처 00전철역까지 오렴. 그러면 나도 지금 출발해서 00역으로 갈게. 우리 그곳에서 만나서 함께 학교에 가자."
덕:(기다렸다는 듯) "응"

우리는 그렇게 만나서 내 차에 덕이를 태우고 가는데 내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스쳐갔다. 정확한 상황은 몰랐으나 내가 대학에 있다보니 시험에 관련되어 어느 정도 무슨 일인가를 예상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 내가 직면하기가 씁쓸했다. 한편으로 덕이의 속 생각이 염려되어 운전하면서 물어보았다.

고모 = "덕아~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덕= "안 해"

고모= "안 해?"
덕= "응, 안 해."

고모= "고모 생각엔 덕이가 룸메이트에게 섭섭할 것 같은데."
덕 = "..."

고모 = "예전에 고모도 친구가 약속을 안 지킨 적이 있었을 때 많이 섭섭하고 속상했거든. 그래서 그 후부터는 그 친구 계기로 고모는 무슨 약속을 하면 꼭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었어."
덕:"고모가 많이 속상했겠다"

고모= "응, 많이 속상했었어. 덕이도 지금 많이 속상하니?"
덕= "응"

고모 ="지금 이 상황은 너가 충분히 속상할 수 있어. 친구가 미리 전화로 '먼저 가게 되어서 미안하다'라고 해주었으면 속상하지 않았을텐데."
덕 = "응"

고모 = "학교에 갔을 때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할거니?"
덕= "몰라"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학교에 도착했다. 거기서 이미 재시험을 끝마치고 나오는 룸메이트와  마주했다. 순간 그 순진한 룸메이트는 덕이와 나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한다.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지금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면 오후에 인천 가는 버스가 있으니까 타고 가겠단다. 덕이는 나를 응시하며 '룸메이트가 우리를 기다렸다가 룸메이트와 함께 집에 가고'싶은 심정을 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룸메이트에게 그렇게 말을 하니까 "엄마가 우리를 만나더라도 시험 끝나고 버스 타고 혼자 오라"고 하셨다며 기운없이 축 처진 모습으로 혼자서 갔다.  

미안해서 덕이에게 "먼저 간다"고 전화조차 못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저 아이에게 그 부모는 무슨일을 하고 있는건가.
#재시험 #만남 #약속 #옳고 그른일 #진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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