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직업병 피해자(삼성 LCD 근무) 한혜경씨와 어머니직업병 피해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쓰는 혜경씨와 어머니는 멀리 춘천에서부터 올라와 오늘도 농성장을 지킨다.
반올림
삼성 반도체·LCD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반올림이 서울 강남의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선선한 가을 날씨였는데 이제 콧물을 동반하는 초겨울로 접어 들었습니다.
사실, 삼성을 상대로 8년을 싸워온 반올림도, 삼성 앞에서 농성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노숙을 하는 것도, '농성'이라는 걸 해보는 것도, 난생 처음입니다. 좋은 친구들과 오토캠핑 해보는 게 늘 로망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이런 곳에서 꿈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벌써 한 달이라니요. 강남역 길거리 농성에 돌입하기 전 두렵고 떨리던 마음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마치 강남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강남역 8번출구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8일 밤은 삼성전자 사옥이 있는 강남역 사거리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2일차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이 '길바닥 호텔'의 투숙객이었던 저는, 플라스틱 파레트를 깔아 놓은 호텔방에 겨울 침낭을 쓰고 들어가 누웠습니다. 그 때까진 아직 비닐도 치지 않았고, 날씨도 지금 처럼 춥지 않아서 제법 운치를 느낄 만했습니다. 강남대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높은 가을 하늘과 꼴 보기 싫은 삼성전자 건물 꼭대기의 사각 모서리가 그리는 밤풍경은 저를 묘한 기분에 젖어들게 했습니다.
이 곳에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삼성전자 사옥 바로 옆에 딱 붙어 차려져 있는 반올림 농성장에 드러누우면 건물 전체가 푸른 빛의 유리로 감싸인 '삼성전자'가 나를 내려다봅니다. 땅바닥에 딱 붙어있는 나와 미끄덩하게 쭉 뻗어있는 저 높은 건물. 참 대조적인 장면입니다. 양치도 안 하고 후줄근하게 노숙을 하는데도 참 뿌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