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밤에 찾은 완도경찰서 출입문. "환한 미소의 당신, 완도 경찰의 얼굴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신혜 3남매는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규
김신혜는 말했다. 나에게는 15년 전에도 국가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없다고.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간 후 그녀의 이름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 이름을 대신하는 번호가 매겨졌고 따라서 인권도, 명예도, 그리고 존중감도 사라졌다고 한다.
경찰서에서는 한번도 못본 낯선 남자 수사관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 함부로 자신의 팔과 머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차마 다 옮길 수 없는 욕설과 모욕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이 년, 저 년이라는 욕설로 불리는 가운데 자백을 강요당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고작 23살이었던 그녀에게 수사 경찰들은 정말 가혹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긴 생머리였던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움켜쥔 채 강력계 사무실 여기 저기로 끌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냥 인정해라. 인정하며 그때부터 편해진다"며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를 거부할 때마다 가혹행위가 반복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가장 편한 곳이 유치장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적어도 유치장 안으로 들어오면 더 이상 경찰에게 맞지 않아도 되니 그녀는 유치장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체포되고 며칠이 지나가던 그때 유치장 밖으로 나오라는 경찰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신혜씨는 나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또 당할 가혹행위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키 155cm에 40여kg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체구를 움츠리며 구석으로 붙었는데 그때 들려온 말이 너무도 반가웠다고 한다. "오늘은 검사 만나러 검찰청으로 간다"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순간 김신혜씨는 너무 기뻤다고 한다. 자신이 그동안 당한 가혹행위와 억울함에 대해 '적어도 검사는 자신의 말을 믿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김신혜씨는 그날, 검사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를 만난 후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살려달라고 매달렸다고 한다.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그런데 경찰이 때리고 욕하고 강제로 서류를 만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신혜씨가 주장하는 그런 증거 조작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사례가 구속될 때 작성하는 '긴급 체포서'였다. 긴급 체포 서류는 반드시 자신의 자필 이름과 손가락 무인이 찍혀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김신혜씨의 긴급 체포서는 이상했다. 무인만 있을 뿐 '김신혜'라는 자필 서명이 없었던 것이다.
변호인이 그 이유를 묻자 이에 대한 김신혜씨의 증언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경찰서에 끌려온 직후였다고 한다. 경찰관이 그녀에게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기에 자필로 이름과 무인을 찍으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서류가 무엇인지 일체의 설명도 없었다고 한다. 문서 제목은 '긴급 체포서'였다.
난생 처음 경찰서를 갔지만 김신혜씨는 그 서류에 자신의 이름과 무인을 찍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에게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는 것. 폭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질문을 하자마자 경찰관은 마치 샌드백치듯 그녀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때렸다고 한다.
"머리털이 있어 상처가 쉽게 보이지 않는 머리를 집중적으로 때린 것"이라고 김신혜씨는 격분하여 외쳤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는 따로 있었다. 경찰관의 갑작스러운 폭력에 너무나 아프고 당황하던 그 때 들려온 말은, 그래서 15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질문은 경찰인 나만 하는 거야. 알았어. 넌 질문할 권리가 없어."하지만 그날, 김신혜씨는 끝내 무인 찍기를 거부한다. 서명을 하는 순간 자기가 아버지를 죽인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쏟아지는 가혹행위 앞에서도 끝내 자필 서명과 무인 찍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또 다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서명 날인을 거부하며 저항하자 한 경찰관이 "그냥 강제로 손 잡아서 찍어 버려"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자 우악스러운 한 경찰관이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에게 다가와 오른손을 낚아 챘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으로 제압된 상태에서 경찰은 그녀의 엄지 손가락을 강제로 편 후 인주를 묻혀 긴급체포 서류에 지장을 찍었다는 것. 김신혜씨의 법정 진술이었다.
김신혜씨는 '경찰 수사가 모두 이런 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만들어진 거짓 서류는 15년이 지난 오늘, 이 사건이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입증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힘으로 무인을 찍는 것까지는 가능했으나 '김신혜'라는 자필 서명은 그곳에 남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자필 서명하라고 건넨 볼펜을 그녀가 거부하자 결국 경찰은 이후 자필 서명란을 공란으로 두게된다. 결국 지장만 있고 자필 이름은 없는 이상한 긴급 체포서. 이 서류는 이날, '경찰의 이 수사가 강압적 수사였다'는 중요한 증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된다.
현장 검증날, 저항하던 그녀에게 경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