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마친 의미로 보라색 인주가 묻은 새끼손가락을 보여주는 버마 총선 풍경을 소개하는 BBC 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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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장벽에 부닥쳤다. 왜냐하면 1988년 민주항쟁 유혈진압, 1990년 총선 결과 무시, 반군부 인사 수감 등 노골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군사정부 하의 버마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1997년에 들어와 아세안이 버마를 회원국가로 받아들여서 버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경제교류를 확대할 수 있었다. 출범 30주년을 기념해 '하나의 동남아시아'라는 구호를 내건 아세안(ASEAN)이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서방의 경제봉쇄에 따른 경제적 제약을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번 총선에서 2011년 출범 이후 정치개방, 경제개방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 더딘 민주화 이행'을 내용으로 하면서 서방과의 물꼬를 트려고 했던 테인 세인 군부개혁세력의 업적 정당성 확보 프로젝트는 버마 국민들의 냉혹한 심판을 받았다.
버마 민족민주동맹(NLD)의 승리그렇다면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버마 국민대중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한 얘기이지만 첫 번째는 자유권 확보에 대한 기대이다. 반세기 이상 버마 국민대중은 전근대 왕조시대와 유사한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에 갇혀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대중들은 군부에 의해 규율되는, 이른바 규율민주주의(disciplined democracy)를 더 이상 감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두 번째는 버마 군사정부 시기에 벌어진 최빈곤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여망이다. 현재 버마는 1인당 GDP가 1,200 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이다. 세 번째로는 53년 전 군부의 정치개입 빌미가 되었고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인 정치적 평화를 위협하는 소수민족과의 분쟁 종식에 대한 기대이다.
지난 역사는 정치적 격변 시기의 환희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음을 보여준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 국민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부푼 기대감이 사그라들고 종족간, 이념간 갈등이 군부의 정치개입 빌미가 되어 내전으로 치달은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아웅산 수지의 민족민주동맹(NLD)은 불교극단주의세력을 의식해 이번 선거에서 무슬림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또 이미 오래전부터 소수종족 로힝야 박해문제에 눈감았다. 이런 약점을 갖고 집권세력으로서 출발하게 된 것이 민족민주동맹(NLD)이다.
또한 최빈곤 상황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성장정책과 분배정책을 지혜롭게 추진할 수 있는 엘리트들을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특히 개헌이 있지 않는 한 규율민주주의를 명시한 현행 헌법에 따라 의석의 25%와 핵심 정부부처를 장악하게 되는 군부와의 권력공유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개혁의 폭과 속도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물론 군부는 민주화 이후 예견되는 처벌로부터의 안전장치를 최소한 보장받으면서 현행 헌법개정에 합의하고 개입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다음 기회를 기대하면서 과감하게 퇴각할 수도 있다.
미국의 영향력 확대민주주의로의 행보와 관련하여 또 다른 변수가 되는 것은 미국의 영향력이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버마 군부를 계속 압박해온 미국으로서는 아웅산 수지 세력의 집권이 그들의 공로라고 자화자찬할만 하다. 미국은 그동안 버마로부터 망명한 인사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기회도 부여했다. 민주화 이후의 버마를 고려해 외교적 자산을 쌓았던 것이다.
아웅산 수지의 민족민주동맹(NLD)의 압승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미국이 버마 주재 북한 대사를 특별제재 대상으로 삼은 것도 자신들에게 성큼 한발 다가올 버마의 국내 정치환경 변화를 염두에 둔 자신감의 표현이다. 나아가 미국은 과거 도덕 외교의 자산을 등에 업고 버마를 아시아 중시정책의 핵심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다. 물론 군부와의 밀월을 누린 아세안(ASEAN) 국가들과 중국은 미국만큼 도덕적으로 당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버마만 하더라도 독립 이후의 종족간 갈등이 영국 식민종주국의 분할지배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 식민당국은 다수종족인 버마족을 기본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분할지배 차원에서 군대를 까렌족, 까친족, 친족 등 소수종족 위주로 조직하였다. 그 결과 자연스레 버마족과 소수종족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과거 버마 군부의 수뇌부는 이렇듯 교활한 식민주의정책에 저항한 청년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이후 버마족과 소수종족간의 분쟁 속에서 정치적 역할을 맡게 된 버마 군부는 자폐적 민족주의(xenophobic nationalism)를 내면화하면서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 세력이 그랬듯이 '리바이어던'(괴물)으로 변신해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서방 국가들은 이러한 리바이어던의 탄생과 무관하다는 듯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성을 거론하면서 리바이어던에 대한 외교적 제재에 나섰다. 리바이어던의 탄생과 무관하지만 리바이어던을 포용한 아세안에 대해서는 반인권적이라고 비난했다.
아웅산 수지의 햇볕 접근과 과제이러한 맥락에서 아웅산 수지의 군부와의 대화는 이 같은 동아시아에서의 비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이른바 버마 군부와의 관계에서의 햇볕접근(sunshine approach)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햇볕접근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군부 통치하의 버마에 대해 취했던 포용정책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한반도 내에서 남한 정권이 북한 정권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할 것인가와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분명히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의 승리는 동아시아에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강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평화체제 건설을 위한 소수종족들과의 신뢰구축이 절대적이다. 비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세력인 군부와의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을 위해 미국 등 서방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으면서도 군부개입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1947년 핀롱협약을 통해 화해에 기반한 연방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버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1911~1947)의 꿈이 그의 딸인 아웅산 수지를 비롯한 민주화세력에 의해 구현될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힘은 대결과 배제가 아닌 화해와 포용에서 나옴을 아웅산 수지가 여는 새로운 시대가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자유주의의 확장을 의미하는 이러한 새로운 시대는 박정희, 수하르토, 리콴유, 마하티르 등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청산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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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정 청산, 아웅산 수치 '햇볕정책'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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