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에 녹은 눈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리고, 먼저 지나간 산객들이 남긴 발자국이 길을 열어 주던 숲속에는 벌써 하얀 겨울이 와 있었다.
김연옥
계속 오르막이 이어져 다소 힘들었지만 첫눈을 맞이하는 기쁨이 더 컸다. 겨울에 설경을 보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지역에 사는 터라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마저 즐거움을 주었다.
그렇게 40분 정도 걸어갔을까, 김유신이 태어날 때 나온 태를 보관해 둔 김유신 태실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는데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곳 계양마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김유신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법흥왕 19년(532)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이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로 숙흘종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천 지역인 만노군의 태수로 부임하는 서현을 따라나섰다.
가락국 후예인 서현과 서라벌 공주인 만명의 사랑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 같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긴 김유신의 탄생 못지않게 1400여 년 전 오로지 한 남자만 믿고 떠날 수 있었던 신라인 만명공주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