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1일 오전 충남 천안 아이쿱생활협동조합 초청 강연에서 제헌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지유석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한다. 지금 헌법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를 젊은이에게 돌려준다면, 그리고 헌법이 살아 움직인다면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1일 오전 충남 천안시 아이쿱 천안소비자생활협동조합 초청 강연에서 강조한 대목이다.
한 교수는 '한국 현대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제헌헌법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제헌헌법은 해산된 통합진보당 강령보다 더 빨갛다. 현행 헌법은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해 놓고 있는데 제헌헌법은 여기에 더해 노동자가 이익의 일부를 가질 권리인 '이익분배균점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해 놓았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은 자본가들이 독점한다. 반면 제헌헌법은 노동자의 몫을 정해 놓았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과 처음 맺은 계약서 원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이상해졌다. 종편 언론에서는 내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제헌헌법은 기본정신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조화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외할아버지인 유진오는 법제처장 시절 쓴 <헌법해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진보적 의제의 90% 이상이 제헌헌법에 담겨져 있다고 봐도 좋다."한 교수에 따르면 제헌헌법엔 대타협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한 교수는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제헌헌법과 여기에 담긴 정신은 누락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 교수는 그 근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헌헌법은 85조에 '지하자원과 수산사원 등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 87조는 '운수, 통신, 금융,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용으로 한다'고 밝혀 놓았다. 농지는 어떨까? 제헌헌법은 농지를 농민에게 줘야한다고 했다. (지주의) 사적토지소유권을 유지하면서 농민에게 땅을 나눠줄 방법은 없다. 사실상 지주로부터 땅을 빼앗아 농민에게 주겠다는 말이다. 당시 조선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졌고, 지주의 정치적 연합체인 한민당에서 중직을 맡고 있었던 김성수는 찬성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사회분위기는 혁명의 기운이 비등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백범 김구, 약산 김원봉은 농민에게 토지개혁을 약속했다. 일제 강점기 인구의 80%는 농민이 차지했고, 이들을 조직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은 불가능했기에 이 같은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이뤄진 토지개혁도 영향을 미쳤다. 김성수는 토지 소유권에 집착하지 않았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대지와 임야는 제외되고 농지로 제한됐다. 김성수가 농민에게 대지는 놔두고 농지만 가져가라고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지주를 향한 설득노력도 했다.
김성수는 지주와 농민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 대타협이란 이런 것이다. 보수세력의 시선으로 볼 때, 김성수의 사례는 가르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제헌헌법의 정신이나 대타협 사례는 누락될 것 같다. 먼저 현실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면 잡혀간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은 양보를 강요당할 것을 우려한다. 양극화가 심화됐음을 감안해 보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장 없애고 배급제 도입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