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애지
겨울 저녁에 방바닥을 덥힙니다. 아이들을 자리에 눕히고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두 아이를 잘 재우고 나서 부엌으로 갑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겠네 싶어서 기름기 있는 그릇을 뒤늦게 설거지합니다.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이를 닦이고 손발을 씻기면서 설거지를 한 빈 그릇은 벌써 물기가 말랐습니다.
밥찌꺼기는 고양이밥이 되도록 마당 한쪽에 붓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밤별을 올려다보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춥니다. 딱히 춤을 출 일이 없을 수 있지만,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즐거이 삶을 누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별밤에 혼자 마당에서 가볍게 춤을 추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한양명님 시집 <허공의 깊이>(애지,2012)를 호젓하게 촛불맡에서 읽습니다.
과음을 할 때 또는 / 내가 나란 걸 잊을 때 /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어쩌다 활짝 핀 소년들 보면 / 부러울 때가 있다 / 내가 다시 저 나이라면 /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을 텐데 (소년들 보면)한자말 '허공'은 "텅 빈 공중"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공중'이라는 한자말은 "하늘과 땅 사이에 빈 곳"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뜻을 살피면, '허공'을 풀이한 한국말사전은 좀 엉뚱합니다. "텅 빈 빈 하늘"로 풀이한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헤아리면, "빈 하늘"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이 같은 겹말풀이를 안 했을 터이나,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말을 제대로 살피는 사람이 너무 드뭅니다. 왜 "빈 하늘"이나 "하늘"이라 말하지 않고 '허공·공중' 같은 한자말을 빌어야 할까요? '하늘'이라 말하기보다 '스카이'라 말할 적에 어쩐지 남다르거나 새롭다고 느끼는 마음일까요?
농사짓는 일을 / 시적 대상으로 보기 일쑤인 / 삼류시인 지아비를 믿을 수 없어 / 과수원집 넷째 따님, 아내는 홀로 / 늦봄을 뒤적이고 또 뒤적이며 / 두 마지기 반, 작지 않은 산밭에 / 고추며 참깨, 콩팥을 심는다 (아내는 시인이다)시집을 읽다가 사전을 읽던 손길을 살짝 멈춥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우리 마을 뒤쪽에 있는 멧자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입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요, 흐르는 냇물을 마실 수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먹는샘물을 사다가 마셔야 하면서 으레 빈 페트병이 잔뜩 나와야 했고, 시골에서 사는 동안 흐르는 골짝물을 마시기에 빈 페트병을 걱정할 일이 없을 뿐더러, 언제나 싱그러운 물맛을 누립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마셨습니다. 빗물을 마셨고, 냇물을 마셨어요. 우물물을 마셨고, 골짝물을 마셨지요. 샘물을 마셨고, 깨끗하며 정갈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어요. 옛날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싱그러운 물로 싱그러운 몸이 되도록 북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