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는 초미세 열 감지 센서가 있다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91] 난자까지 찾아가는 비법은 놀라운 온도 구분 능력

등록 2015.12.07 11:22수정 2015.1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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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일부라 할 수 있지만, 본체와 떨어져 홀로 움직이는 희귀한 세포가 있으니, 바로 '정자'다. 수정은 생명의 기초요, 근원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아직까지 인간의 구체적인 수정 메커니즘을 낱낱이 규명하지는 못했다. 특히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은 많은 부분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정자가 난자를 찾아가는 길은 희망찬 여행이 아니라 일종의 극한 모험에 가깝다. 수억 마리의 정자 가운데 하나 혹은 잘해야 둘 정도만이 난자라는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행인 TV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류 모험은 옆에도 오지 못할 정도로 정자가 난자에 이르는 여정은 험난하고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사정된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기까지는 길면 대략 2시간이 걸린다. 사람 기준으로는 짧을지 모르지만, 평균 '신장' 0.05 mm의 정자에게는 온 힘을 소진해야만 하는 힘든 시간이다. 정자가 난자까지 헤엄쳐가야 하는 거리는 10cm, 정자가 사람 키라고 가정하면 여성의 난관 길이인 이 10cm는 4km가 넘는 거리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10리도 넘는 길을 달려가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도대체 어떻게 정자는 그 먼 길을 찾아갈까? 수많은 가설들이 제기되고, 또 일부는 검증된 가운데 극히 최신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자도 사람의 눈과 코에 비견할 만한 인지체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적인 빛은 아니지만 열을 감지하는 '눈'이 있고, 화학물질의 냄새를 맡는 '코'가 있다는 것이다.

난자가 위치한 부분은 난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온도가 높다. 난관의 입구 쪽은 반대로 온도가 가장 낮다. 그러나 이 차이는 섭씨 1~2도니 하는 수준으로 확연한 게 아니다. 일반 온도계로 측정한다면 구분해낼 수 없을 정도니, 사실상 같은 온도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자의 열을 감지하는 '눈'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정밀도로 온도 차이를 감지해낸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팀은 지난달 하순 정자의 여정을 규명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정자가 0.0006도의 온도 차이까지도 구별해낸다고 밝혔다.

정자의 평균 길이 0.05mm는 시력 좋은 사람이 육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최소 크기인 0.1mm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난관의 '온도 경사'를 읽어내는 비장의 무기를 장착하고 있기에 동료 정자들과 앞을 다투는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어느 정자인가는 난자에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다.

10cm라는 '장거리' 여행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열쇠는 정자 머리 부분에 있는 '옵신'(opsin)이라는 단백질 덕분이다. 바로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 즉 눈 역할을 하는 물질이 있는 것이다. 옵신은 사람의 망막에 분포해 있으면서 빛을 감지하는 로돕신(rhodopsin)과 같은 계열의 물질이다. 옵신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화학물질이지만, 정자의 예에서 보듯 온도에도 역시 반응할 수 있다. 모든 열이 그런 건 아니지만 때때로 열도 크게 보면 빛과 마찬가지로 전자기파의 일종일 수 있다.


정자가 난자 부근까지 다다랐을 때 보다 상세한 길 안내를 하는 건 난자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이다. 정자는 이 때 난자에서 분비된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코'를 동원해 마침내 난자와 수정을 시도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옵신은 목적지(난자) 인근까지의 길을 안내하고, 최종적으로 난자에서 풍기는 냄새를 정자가 감지해 난자와 결합하는 것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 입니다.
#정자 #난자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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