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모인 전교조 '연가투쟁'지난 11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와 노동개악 저지를 주장하며 연가투쟁 집회를 열고 있다.
이희훈
저성과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특히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노동자, 질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 등은 표적이 되기 쉽다. 현재 우리나라 법은 해고 요건을 비교적 엄격하게 정해둔 반면 저성과자를 만들 수 있는 사업주의 재량은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사직을 유도하기 위해 벌이는 전직 등 각종 형태의 괴롭힘이 인사관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인의 전문성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잦은 업무전환, 불합리하고 일관성 없는 인사고과를 통한 통제를 통해 얼마든지 저성과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사용자의 입맛에 맞지 않은 노동자는 언제든지 해고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시에 이런 일터 내 괴롭힘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시킬 가능성이 높다.
일터 괴롭힘 등 가학적 노무관리는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고,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높인다. 또한 질병이 있는 사람에 대한 해고 역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질병이 발생한 노동자에게, 또한 개인 질병이 발생한 노동자에게도 이를 극복하고 다시 건강하게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이 이를 비용으로 인식하여 저성과자로 낙인찍고 해고를 한다면,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물론 사회 안전망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고용불안이 가져오는 노동자 건강의 악화를 지적한 바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고용불안이 정신건강뿐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 과도한 음주와 흡연과 같은 건강행태의 악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불안에 의한 노동자 건강의 악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며, 전 세계 연구자들이 그 관련성을 밝히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고용불안에 의한 건강영향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은 고용불안이 심리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 고립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국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그 자체의 문제 뿐 아니라, 저임금, 실업급여를 비롯한 사회보장으로부터의 배제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어, 고용불안으로 인한 건강영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쉬운 해고는 흔하고 잦은 실업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이다. 실업의 경험은 말 그대로 트라우마다. 실업을 당하면 가장 먼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해 의료 이용이 어려워진다. 결국 건강행태의 악화와 자존감의 상실 등 정신과 신체에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실업이 심혈관계질환, 정신질환, 심지어 사망률까지 높인다는 연구가 있다. 실업을 당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건강에 더욱 심한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가 다수 있다. 해고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만, 설사 실업상태에 놓여있어도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쉬운 해고의 도입은 고용불안이 더욱 확대되고, 실업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노동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를 완충할만한 사회보장제도도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 노동자들의 건강은 끝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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