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흥시장 철거 앞두고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

등록 2015.12.24 16:28수정 2015.12.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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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3일 재흥시장 모습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재흥시장 건물 옆 한 시민이 차량을 주차한 뒤 내리고 있다.
2015년 12월 23일 재흥시장 모습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재흥시장 건물 옆 한 시민이 차량을 주차한 뒤 내리고 있다.이창호

축복의 설렘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인천시 남구 주안4동 재흥시장을 찾았다. 이곳 시장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최근 대한산업안전협회의 안전진단 결과,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아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슬럼가를 연상케 한다.

재흥시장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장 건물 주변 개인주택에도 점포가 들어서 100여 개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사람들로 북적였다. 현재 주민등록상 48가구 9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29가구 61명 정도가 위태로운 시장 건물을 떠나지 못한 채 머물고 있다.

상가들은 1층 점포에서 2층 살림집으로 연결된 구조로, 장사를 하지 않는 34개 점포는 이제는 몇몇 가구만 살림을 하고 있다. 1978년 시장 상인들이 입주하고 10여 년 뒤 3층에는 ㈜재흥시장 사장이 분양한 20가구에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관할 구청인 남구는 재흥시장 건물을 재난위험시설로 분류, 내년 10월부터 주민 보상을 통해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고 도시계획시설로 스포츠문화센터·공영주차장 등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보상을 받아도 갈 곳이 없다며 오래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홍호진(63) 번영회장은 "30년 넘게 정착해 살아온 주민들을 무작정 나가라고만 하면 어떡하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79·여)씨는 "재흥시장에서 4남매를 키웠다"며 "하늘나라로 간 영감과 아들딸들의 추억이 깃든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방앗간 주인 박아무개(68)씨도 "시장에서 40여 년 장사했고 단골들이 아직도 많이 찾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안도 없이 떠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오래된 시장 건물을 헐고 스포츠센터나 주차장을 짓는 것보다는 예전처럼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는 주민 안전을 위해 건물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구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이곳 건물 3층 발코니 보수공사를 하면서 일부 건물이 붕괴돼 인명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다"며 "보상 문제로 주민 이전이 늦어지고 있지만 건물 철거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발계획을 수용할 수 없다며 위태로운 낡은 건물에 남아 겨울을 나고 있는 주민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길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호일보(www.kihoilbo.co.kr)에도 실렸습니다.
#인천시남구 #재흥시장 #E등급 #원구도심 #재개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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