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곱창당시에 선배님과 후배와 같이 먹었던 한우곱창. 이 맛에 제안이 더 달콤하게 느껴진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주철진
"형, 나 형이랑 같이 하고 싶어요. 우리 함께 총학생회 해요."선배님과 후배와 함께 한우곱창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당시, 열심히 활동하고 있던 동아리를 쉬면서 자격증 공부와 토익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고민을 토로했다.
"다시 활동도 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아요"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해요" 등의 이야기를 선배에게 털어놓고 있을 때 후배가 내게 말했다.
"형, 나 형이랑 같이 하고 싶어요. 우리 함께 총학생회해요." 며칠 전이었다면 거절했을지도 모르는 제안. 술자리에서의 그 제안은 상당히 달콤했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공부에 지치고, 주변의 어려운 상황에 심란한 상태였다.
"지금 내 마음은 하고 싶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내 속마음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 주변 사람들이 내게 허락하지 않았음도 밝혔다. 고작 24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꾸고 싶은 그런 청춘의 나이였지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언제부터 청춘에게 얹어져 있는 짐이 이렇게 무거웠는지. 당장의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내게 '꿈'이니 '활동' 같은 단어는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고민은 선배의 한마디에 부서졌다. "학생일때는 학생답게 지내면 되지. 학생답게 살자." 당연한 한마디에 고민이 해결됐다. '취업은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지금은 내 자리에서 하고 싶은걸 하자'. 당시에 내가 했던 다짐이었다.
어색함 속에서 시작된 총학생회 간부생활복학을 하고 동아리 활동만 했던 내게 학생회라는 곳은 어색한 곳이었다. 학생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조직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평소 동아리를 하면서 봤던 총학생회는 '학우'의 '학우'에 의한 '학우'를 위한 조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총학생회실에는 밤에도 불이 잘 꺼지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는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학우들을 위해서 차를 렌터하거나 버스를 대여해 새벽까지 학우들을 집에 데려다 주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많은 시간을 학우들을 위해서 쓰다 보니 간부들은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실, 총학생회를 결심하게 되면서 걱정했던 부분은 내가 학우들에게 헌신적인 모습으로 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다른 간부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을거야'라는 믿음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