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마음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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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14개월 동안 휴직했다가 복직하게 된 부서에서는 일 때문에 토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든든한 친정엄마라는 육아 지원군이 있어 가능했던 일인데요. 오전 7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11시 넘어 집에 도착하는 일이 일상이고, 때로는 다음날 새벽 1~2시 퇴근, 주말 출근도 비일비재했죠. 어느 해 12월에는 아홉 번의 주말 중 일곱 번을 평일처럼 출근해서 근무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쌍둥이 남매의 육아를 오롯이 전담하시던 친정엄마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나서야 전 다시 가족 간호와 육아로 10개월간 휴직하게 됐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규모가 좀 큰 편이라 복귀할 때 원래 있던 부서에 재배치되는 경우가 거의 드문데도 열심히 일했던 이전 모습에 대한 회사 쪽의 기대감 때문인지 휴직 전 부서에서 강하게 끌어줘 원래 자리로 복귀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번 경험했던 힘든 상황에 저 스스로 몸이 움츠러들더군요. 가뜩이나 친정엄마가 항암치료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저는 어떻게 하면 많은 일을 부여받지 않고 숨어서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워킹맘이 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지만 나서서 말하면 그 일이 내게 떨어질까 봐 속으로 꾸욱 눌러야 하는 느낌을 몇 번 받다 보니 이젠 회의 시간에도 무감각해지고 있어요.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아이를 핑계로 회사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선배맘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저는 공과 사를 구별하며, 두 가지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바뀌다그런데 요즈음 제 생활의 중심은 아이들에게 쏠려있습니다. 쌍둥이이고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큰 변화를 겪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어쨌거나 일과 육아 중 육아 쪽으로 중심이 기울어져있는 건 사실이에요. 언젠가부터 적어도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고 사무실에서 오후 8시엔 퇴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식을 강요당하지 않을뿐더러 제 할 일만 딱 하고 퇴근하게 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사무실에 덜 오래 머문다는 것은 일을 덜 한다는 것으로 여겨져요. 그만큼 조직에서 인적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덜 인정받는다는 얘기와 다름이 없는데요. 처음부터 무능했다면, 일 욕심이 없었다면 모를까 하루하루 사무실에서의 존재감이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을 체감하는 게 얼마나 속이 쓰린지…. 동료들은, 남편들은 알까요?
중요한 일의 중심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치하를 받으며 치열하게 보낸 경험이 있었던 만큼 중요한 일에 배제되고 승진 포기자 대열에 합류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의 상실감. 일 잘하는 직원에서 별 볼 일 없는 직원으로 변해 자괴감에 빠지기까지는 1년, 아니 반년도 채 안 걸린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왕년에 나는 이랬었다'는 존재감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얼굴에 철판을 깐 듯 그냥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한 부서에 오래 있어서, 한 업무를 대체인력 없이 오래 해낸 까닭에 저의 이른 퇴근을 콕 집어 지적하는 선배가 없기는 했죠. 하지만,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저를 찾던 시절을 생각하면 현안에서 열외가 된 느낌, 점점 잊히는 느낌에 '대강 이렇게 다니다가 나이가 들면 퇴직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퍼지더군요.
한직으로 밀려난 나, 오히려 감사할 타이밍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