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병상을 갖춘 병원으로 확장 이전한 병원2번에 걸친 입원과 8개월여 통원치료를 했던 열악한 환경의 온고을 활병원이 확장 이전해 100병상에 넓고 쾌적한 치료실을 갖추게 되었다.
서치식
병원에서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간이 되면 무조건 퇴원해야 하는 재활병원의 불문율에 익숙해져 갈 무렵인 2006년 12월, 난 네 곳의 병원을 여섯 번째 옮겨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규모의 재활병원에 입원해 본격적인 재활을 하고 있었다.
의원급의 작은 병원인지라 밤에는 원무과 남자직원 한 분과 여자간호조무사가 숙직을 하며 입원 환자를 돌보는 등 병원을 관리했다. 정해진 병원 치료 외에도 나만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재활에 매진하던 때인지라 나만의 일과를 마치고 늦은 시간 병실에 들어서니 그날의 마감 뉴스가 병실의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심코 뉴스를 듣다보니 인근 군산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그날 저녁 화재가 일어나 임산부와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숨졌다는 소식을 다급하게 전하고 있었다. 혀를 차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화재 비상벨이 울려 이미 잠들었던 환자들, 깨어있던 환자들 모두가 다급하게 복도에 나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숙직을 서던 원무과 직원과 어린 간호조무사가 급히 뛰어다니며 병원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늦은 밤이므로 비상벨의 전원을 차단해 일단 소리를 없애고 다음날 수리를 할 수밖에 없어서 한밤의 비상벨 소동은 그렇게 끝났고 나를 비롯한 모든 환자들도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이라면 그저 한밤에 있었던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지나갈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사고당한 지 2년째 접어들었지만 그때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때인지라 마감뉴스에서 다급하게 전하던 이웃 군산소재 한 병원의 화재 소식과 그 밤의 비상벨 소동이 함께 떠오르면서 밤새 불길한 생각에 시달려야만 했다. 희한하게도 스스로가 그런 불길한 생각은 분명 트라우마로 인한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도통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밤을 하얗게 지새운 나는 아침이 되어 회진을 도는 그 병원의 원장님에게 지난밤 소동을 이야기하며 그로 인해 밤을 하얗게 새우게 되었다는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이러는 게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는데 오늘 꼭 좀 비상벨을 고쳐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현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불길한 생각을 하는 것이 트라우마라면 더더욱 재활의학을 전공한 의사에게 이야기하고 거기에 맞는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망상에 시달리며 밤을 하얗게 새우고 여러 번 망설이다 어렵게 이야기를 한 내 바람과는 다르게 내 이야기를 들은 그 원장님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아버님! 여기는 병원이라서 소방서에서 특별히 화재경보기 센서를 예민하게 해놔서 가끔 그렇게 오작동을 하는 것이니 마음 푹 놓으세요"라는 대답만을 남긴 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