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들이 때 손주 사진을 찍어주는 어머님, 자신의 핸드폰 화면바탕에 손주들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이혜선
이렇게 이야기하니 단점만 수두룩한 것 같지만, 사실 장점도 아주 많아. 일단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야. 친정이나 시부모님이 거리상 멀거나 사정이 안 돼서 도움받지 못할 경우 힘들어하는 거 많이 봤잖아? 일단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고마워해야 해. 그런데 '시댁 합가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신중해지긴 해.
첫 번째 장점으로 나는 출근과 퇴근시간의 자유로움을 꼽겠어. 사실 근처에 살아도 되긴 하는데, 아침에 정말 내 몸 하나만 챙겨서 나오면 되니까.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지. 아이 옷을 입히고, 지각할까봐, 혹은 교통편을 놓칠까봐 아이를 재촉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잠이 덜 깬 아이 볼에 입맞춤만 하고 나오면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갑자기 퇴근시간에 회의가 잡히거나 야근을 하게 되면 어머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회사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거지.
두 번째 장점은, 아이들의 정서야. 집안에 같이 생활하는 어른이 많다 보니까 아이들이 많이 안정돼 있어. 외로울 틈이 없지. 어른들이야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계속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존재거든.
퇴근하면 정말 피곤에 쩔어서 아이들 책 한 권 읽어주기 벅찬데 호기심 때문에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정성스럽게 대답하기도 너무 힘들어. 그런데 어른들이 많으니까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질문하고 배우지. 그중에는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시부모님들의 지혜도 많아. 이 세상에서 부모 말고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100% 순수한 사랑으로 대하고 대답해주겠어.
세 번째 장점으로 평일엔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물론 칼퇴근 하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집안일을 어머님 혼자 하시도록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칼퇴근을 할 수 없는 구조에 1시간 정도의 퇴근시간이 소요된다면, 이미 집에 가면 이미 오후 8~9시야.
그 시간에 집안에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하느라 아이와 눈을 맞출 시간도 부족한 게 워킹맘의 현실이잖아. 그런데 평일에는 어머님의 보조를 조금 받으면 집안일이 훨씬 줄어들어있어. 혹시 어머님이 힘들어하신다면 가사도우미 도움을 받는 것도 좋고. 나도 복직 초기에 어머님께서 힘들어하셔서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좀 받았어. 이후, 어머님과 내가 잘 조율해가니 또 하게 되더라고.
아, 이렇게 적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데는 남성보다 여성의 역할이 참 크다, 그렇지? 가끔 어머님 힘드신 모습 볼 때마다 참 죄송스러워. 특히 아이들 방학 때,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칠순이 다 되신 어머님이 대답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힘드실 때도 있으니까. 아버님도 계시고, 남편도 있긴 해. 잘 놀아주고, 씻기고, 잘해주는 편이야.
하지만, 밥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장보고, 아이들 준비물 챙기고, 빨래하고 등등…. 남성들에 비해 2~3배쯤 되는 일들을 챙기니까, 그리고 어머님은 그 일을 나 대신 늘 하고 계신 분이니까, 조금 서운해도 참게 되더라고. 다만, 화가 좀 나는 걸 계속 참고, 희생해야 하는 게 어머님 세대나 우리 세대나 왜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선 무척 화가 나곤 하지.
그래서, 결론은...후배여, 너의 질문에 나는 합가를 하라고도, 혹은 하지 말라고도 하지 못하겠어. 내가 합가 이전 선배 워킹맘에게 물었더니 대답해줬던 것처럼,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몸은 편하고, 아이에게도 많이 좋지만, 마음은 불편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아이들을 봐주겠다고 시어머님께서 이야기하셨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해야 해. 그렇게 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은 환경인 거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장단은 존재해. 그리고 잘한 선택도 잘못한 선택도 없어.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나의 모습만 있을 뿐이지. 이 고민을 통해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워킹맘의 치열한 삶을 통해서 너의 성장을 응원할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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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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